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삶의 기반이고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잘못된 역사 왜곡을 어떤 비용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이유이다. 역사 왜곡은 남의 나라가 멋모르고 하거나 패권적 욕망의 결과로 발생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인데, 스스로 자진해서 자신에 대해 역사 왜곡을 한다면 이런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나. 자신을 자해하는 미친짓이 아닌가.
스스로 자신의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개인 저작이나 작은 블로그라도 파장이 큰 일일 것이다. 하물며 모든 국민을 향한 공중파 방송이, 수백억(320억)의 돈을 써가면서까지 역사 왜곡에 나섰다니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수많은 배우들, 감독과 스태프들, 투자사, 광고사, 제작사의 그 많은 한국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역사 왜곡을 대본을 보고 연기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다들 무슨 생각들을 하고 그대로 넘어간 것인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가장 가슴 아픈 건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왜곡의 주체가 됐다는 점이다.
끝난게 끝난게 아니다.
이것은 '조선구마사' 드라마의 폐지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드라마를 80%까지 만들기까지 왜곡의 문제의식을 못 느낀 우리의 정신이 문제이다.
일부러 맘먹고 왜곡을 하려고 한다 해도 이렇게 철저하고 세밀하게는 못할 것 같다. 드라마 속 의상 소품 하나하나가 문제 투성이다. 연회장은 중국식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주요 인물들까지 중국풍 옷을 입고, 성군 세종대왕이 될 한 나라의 왕자 충녕대군은 서양 사제를 시중드는 것도 모자라 주빈의 보조로 한쪽에 병풍처럼 서 있다. 충녕대군은 심지어 자신의 조상을 욕보이는 말까지 한다. 백성을 무차별 학살하는 조선 왕실의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것을 찾을 수 없다.
판다지일 뿐인데 왜 난리?
판타지 액션 사극일 뿐인데 왜들 난리냐고 항변하지만 그럼 왜 실존인물의 실명을 써가면서 사실감을 높이려 애썼나. '조선구마사'측은 중국 OTT 'WeTV'를 비롯 다수 아시아 OTT에 서비스하면서 드라마 내용에 대해 "이 드라마는 '북한 건국'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며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티칸이 북한 건국을 지지했다"는 말도 했다. 중국 등 아시아 시청자들이 보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스스로 자국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판타지 액션 사극이라서 괜찮다' 수준이 아니라 저쪽과 이쪽에 다른 태도를 취하는 '의도적' 역사 왜곡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상력은 용서받을 수 있나?
왜 이런 사극을 만들었을까. "중국이 돈을 댄 것은 아니냐"는 말에 부인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명과 가까운 의주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상상력을 가미했다"고. 역사물에서 상상력도 정도가 있고 예의가 있다. 귀여운 상상력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도 얼마든 환영받는다. 최근 '달이 뜨는 강'에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말모이'에서 우리말 편찬 작업에 팔도에서 모인 '까막눈' 백성들이 참여한 이야기를 넣었지만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은 없었다. 드라마적 요소임을 모두 이해하고 본다. 그러나 역사 왜곡이 국민정서에 반하거나 현실에 영향을 미치면 그땐 사정이 다르다. 가뜩이나 중국이 김치, 한복, 판소리, 비빔밥을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등 한국문화의 예속화를 시도하는 '신 동북공정'에 나선 시점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조선구마사에 대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드라마를 옹호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우리 스스로 나서서 합리적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기본도 안지켜져
역사 왜곡에도 최소한의 고증은 있어야 한다. 특히 배경에 대한 몰이해가 우리를 통째 갖다 바치는 꼴을 만들고 있는데야 말해 무엇할까. 의주가 어떤 곳인가. 만주와 요동 땅, 그것은 여말선초 명의 영역이 아니었다. <동국병감>의 기록을 보면, 공민왕 18년(1369년) 고려는 이성계의 1차 요동정벌에 나선다. 요하와 가까운 요양성까지 점령했다. 그곳의 우두머리는 고려인으로 원의 마지막 황후 기황후의 조카이다. 1388년엔 2차 요동정벌에 나섰다. 즉, 만주와 요동은 명과는 상관없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몽골과 여진, 고려의 후예들이 활동한 땅이었다. 조선이 건국하고 세종 31년(1449년)에 터진 '토목의 변', 몽골족 오라이트가 북경 서쪽 토목보에서 명 황제 정통제를 사로잡은 대사건이다. 즉, 이때도 만주와 요동은 명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의주에 남쪽 한족인 명의 중국풍이 있었다니, 아무리 상상은 자유라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자랑할 정도면 최소한의 기본은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15세기 초가 되기 500년 전부터 의주는 거란 1차 침입 때(993년) 서희 장군이 강동 6주를 확보하고 켜켜이 우리 문화와 세월이 쌓인 완전한 우리나라 땅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도적이지 않다면 주변과 상관도 없는 명의 중국풍 일색으로 깔아놓을 수 있을까.
왕과 성군 유린하기
충녕대군은 6대 조인 목조를 "기생 때문에 야반도주하셨던 분이다. 그 피가 어디 가겠냐"며 자기 조상을 욕보이기까지 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이 창제되자 가장 먼저 '용비어천가'를 쓰고 6대조의 덕을 기린 분이다. 태종에 대한 왜곡도 기가 차다. '칼방원'으로 불릴 만큼 태종은 대표적 철혈 군주이다. 그러나 잘 보면 자신과 후임자인 세종의 통치에 위협이 될 만한 권신과 외척들을 제거했을 뿐 다른 신하나 백성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자애롭고 관대한 임금이었다. 특히 극 중에 일반 백성을 무차별 살육하는 장면의 배경인 함주성(지금의 함흥)은 태종의 고조할아버지인 익조 때부터 몇 대째 살아왔던 곳이다. 대부분이 아버지와 자기와 같이 살아온 동향 사람들이다. 역사적 인물이 워낙 많아 그동안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으로 그려져도 관대하게 넘겼던 전주 이 씨 종친회가 이번만큼은 항의하고 나선 것도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나선 이유
2회 방영분에서 최영 장군을 가리켜 "충신? 충신이 다 얼어 죽어 자빠졌다니? 고려 개발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 해놓고서리"라고 말한다. 고려말 충신 최영 장군은 120회의 왜구 토벌과 우리나라 최초로 수군을 만든 영웅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고려사'에 전쟁에 굶주린 백성을 위해 직접 시여장을 개설해 관청의 쌀을 내어 죽을 제공했고 양식과 종자를 지급해 농사를 짓게 하고 상인들의 매점매석을 금지시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던 분으로 기록돼 있다. 최영 장군 후손들까지 나서 "공영방송사인 SBS에서 판타지 각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게 묘사하는데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만 보는것이 아니다.
조선 초기 나라의 기틀을 이룬 태종의 시기를 '괴력난신의 시대'라고 왜곡 제목을 붙인 것에서부터 인물 묘사, 교황청 연루, 복식, 구마사 설정, 국경지대 묘사, 식문화 등 드라마의 모든 부분이 왜곡돼 있다. 중국 입장에서 작정하고 한국을 왜곡한다 해도 이렇게 세밀히 철저히 왜곡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넷플릭스 등 해외까지 논란이 번져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검열"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조선구마사가 부당하게 취소됐다. 적정한 플랫폼에서 방영하면 성공할 것이니 넷플릭스에 올려달라"는 요청까지 나오고 있다. 광고주가 물러가고 불매운동에 나선 국민을 본 후에 방영을 밀고 나갈 상황이 안되자 스스로 취소한 것이지 정부나 누가 강압해서 취소시킨 것이 아니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도 아니고 검열도 아니다.
신 동북공정 빌미
한국 드라마는 우리만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우리 드라마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전 세계 한류 팬이 있다. 국제사회에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서경덕 교수는 "중국이 신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고 일갈했다.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 단재 신채호의 외침이 그냥 있었나. 우리 민족의 혼이 새겨진 그 말만 기억했더라도 대한민국의 공중파 방송국, 배우, 연출과 스탭, 제작사와 그 많은 사람들이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만이 지킬 수 있다. 과거의 패권을 되찾으려는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홀로 미래의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는 우리 한국의 현재를 걱정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