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여성 근로자의 이야기
기혼여성의 변.
"꼬끼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요란한 닭 울음 알람 소리로 어기적어기적 이불속에서 한 걸음씩 나온다. 마지막 알람에 일어났더니 머리 감을 시간이 부족하다. 서둘러 어푸어푸 겨우 얼굴 한 면적을 쓰다듬는 정도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드레스룸으로 간다. 서둘러 지난밤 꺼내놓은 옷걸이 가장 오른편에 걸린 남색 원피스를 입고 현관을 나선다. 닭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이제는 출근길 닭장 같은 2호선에 오른다.
내가 걸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 도착. 이런, 오늘도 가장 늦었다.
인사 없이 조용히 앉아 업무처리를 하는데 아뿔싸 오늘 팀장에게 보고할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보고서를 쓴다. 무거운 걸음으로 팀장실로 들어간다.
인사팀장 출신답게 사회적 미소를 띠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는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눈초리는 싸늘하다. 오늘도 서로 사회적 웃음으로 무장한 채 보고 전 무시무시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시작되었다.
" 결혼한 지 네가 얼마 되었다 그랬지?"
" 네 나이가 몇이었지, 아이 생각은 없니?"
또 이 질문. 지긋지긋하다. 요즘 회사에서 귀에 못이 박히듯 듣는 이야기.
"그래서 아이는?"
처음 몇 번 들었을 때는 인사치레려니, 할 말이 참 없나 보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어서 궁금한가 보다 등으로 애써 넘겼지만 더 이상 이 공간에서는 이 물음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주 화가 파울라 베커(Paula modersohn Becker)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었다. "임신 전에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라는 그녀의 이야기. 100년이 지나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마음이 쏠렸다.
올해 입사 8년 차인 나는 내년 과장 승격을 앞두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매년 20에서 30프로 정도의 승격률을 보이는데,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공공연히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누락을 면치 못한다. 6개월을 휴직한 선배도 1년을 휴직한 선배도, 3개월을 휴직한 남자후배도 대리, 과장 누락을 했다. 그들은 승격한 다른 사람들보다 업무면에서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뒤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서 남편과 적어도 2년의 신혼기간을 가지고 아이를 갖기로 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육아하면서 회사일을 병행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그보다 올해 아이를 가졌다가 승격 누락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과장은 달고 임신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과장 승격이 파울라와 같은 거창한 인생의 꿈도 아닌데 이게 대체 뭐라고 휘둘리는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나는 그저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같이 제때 승격하고, 내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파울라라면 이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졌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꿈을 좇아갔던 그녀마저 임신 전에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으니 말이다.
회사는 겉으로, 시행하는 제도나 기사를 통해서 볼 때에는 임신이나 아이가 있는 여성에게 더없이 부드러운 것처럼 보이지만(부드러운 척하지만) 속내는 90년대의 사고방식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입사할 때는 남자와 똑같이 일하라 하면서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는 어찌나 가혹한지. 육아휴직을 승격 시에 누락시키기 좋은 사유로 꼽고, 아직 임신도 하지 않은 기혼 여성을 곧 빠질 수 있는 하나의 부품 취급을 한다. 주변에 혹자는 다들 아는 기업이 그런데 다른 데는 오죽하겠니 하며 육아휴직을 그렇게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라고 한다.
결혼하고 1년간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회사를 오고 가니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더욱 기혼여성 근로자가 남성은 물론 아이가 있는 여성 상사에게까지 이러한 취급을 받는 이 사회를 탓하게 된다.
파울라가 살던 1900년대 초반에는 지금보다 더 여성들의 사회생활은 억압받았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이나 하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그런 시대에 자신의 신념대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금도 그렇다고, 100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