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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Nov 16. 2018

숯불갈비

너무나 익숙한 숯불향

간단한 물건을 사 오는 길에 익숙한 냄새가 난다. 킁킁대며 냄새의 방향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건너편으로 돼지갈빗집 간판이 보이고, 창문으로 웃으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족이 다 같이 돼지갈빗집에 가는 날은 최고의 날이었다. 거의 생일을 맞은 기분이었달까. 달달한 숯불 향, 왁자지껄한 시장통 같은 그 공간이 떠올라 웃음 지었다. 나는 매번 익지도 않은 고기와 한참 눈싸움을 벌이다가 덥석덥석 젓가락을 들이댔다. 아직 안 익었어. 나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 익은 거 같은데. 엄마는 단호하게 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아마도 내 인내심의 대부분은 숯불갈비 집에서 형성되었을지도 모른다. 고기가 익는 내내 엄마는 부산하고 성미가 급한 아들의 젓가락질을 예민하게 감시해야 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주문하지 않아도 내가 언제 뭘 먹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공깃밥과 된장찌개, 물냉면, 마지막엔 사이다 한 병. 뻔하지만 그 어떤 코스요리보다 맛있는 구성이었다.
호사스러운 식사를 마치면, 나는 뒤로 몸을 한껏 젖히며 자세를 늘어트렸다. 그건 식사에 대한 평점이었다. 5점 만점에 5점, 매우 만족. 엄마는 그런 나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이구 우리 익준이 자알 먹었어요?

돌아오는 길 내내 냉면에 숯불갈비를 말아 입에 넣는 상상에 허우적거리는데, 일을 마친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오늘 같이 돼지갈비 먹으러 갈까. 아니 그냥 생각이 나더라고. 아들이 살게. 엄마로서는 손해날 것이 없는 제안조건이었다.

엄마와 돼지갈빗집에 마주 앉아 메뉴를 고른다. 숯불갈비를 2인분 주문했다. 엄마가 중요한 걸 빠트렸다는 듯이 공깃밥과 된장찌개, 냉면을 주문한다. 역시 뭘 아는 김 여사. 나는 웃으며 이따 사이다도 꼭 먹어야 한다고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는 일하느라 배가 고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익지도 않은 고기와 한참 눈싸움을 하더니 덥석덥석 젓가락을 들이댔다. 아직 안 익었어.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기를 빼앗았다. 엄마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기가 바짝 익을 때까지 배고픈 엄마의 젓가락질을 예민하게 감시해야 했다.

오랜만에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만찬이었다. 나는 고기와 냉면, 공깃밥과 찌개까지 해치우고는, 한껏 뒤로 몸을 젖혔다. 엄마는 그런 내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네. 오늘 식사는 매우 매우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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