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체온 탓에 사무실에서 난처한 상황이 많았다. 주로 급격하게 더워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여름에 더 심하긴 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무방비로 체온의 공격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사무실에 작은 선풍기를 장만했다.
선풍기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체온이 급상승하면 전원을 켰고, 바로 제정신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센스있는 비서를 둔 기분이랄까. 체온변화의 성수기인 여름이 끝나면 분해해 날개를 닦아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네가 매번 수고가 많다.
퇴사하면서 선풍기도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급격한 체온변화가 사라졌다. 선풍기도 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무료한 오후였다. 책상에 앉아있는데 문득 실내가 더워졌다. 선풍기를 틀었다. 몇 분 되지 않아 덜덜거리며 진동이 심해진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아무래도 모터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신경질을 내며 선풍기를 꺼버렸다.
이내 선풍기에게 미안해졌다. 네가 열심히 일한 거 말고는 무슨 잘못이 있겠니. 몇 년이나 고생하다가 이제 좀 쉬겠다는데, 미안하다.
선풍기는 대답이 없었다. 내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마주보다 시선을 거두었다. 알았다. 너도 좀 쉬고, 나도 좀 쉬자.
_
새 책 <가끔은 조용하고 어둡고 싶은거야>에 수록된 글입니다.
11/27까지 텀블벅 펀딩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