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릴 때부터 성격 테스트니 직업적성 테스트니 하는 걸 하고 나면 결과에 꼭 이런 말이 나왔다.
"호기심은 왕성하나 금방 싫증을 내서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
운명을 말해준다는 사주팔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시작하는 것은 행동력이 있으나 그 지속성이 오래가지 못해 끝맺음이 빈약하다."
그리고 내 주변의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건데. 그리고 시작을 했으면 꾸준히 해야지 싫어졌다고 쉽게 쉽게 그만두면 인내력이라는 게 생기겠니?"
정말 듣기 싫어했던 말들이었지만, 내 약점이겠거니 생각하며 오랜 시간-최소 10년은 걸린 것 같다-에 걸쳐 나는 끝맺음이 부족하다는 '끈기 없음'의 형이상학과 계속해서 싸워왔다. 그리고 마침내,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고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일로 바꿔서,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남아왔다. 그리고 그 노력은 마치 지구가 달을 공전하듯, 매번 사회라는 공동체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던 나라는 존재가, 드디어, 이윽고, 마침내, 사회라는 행성에 안착하여 살 수 있게 해주는,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이 꼬락서니가 되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도록 만든 너무나도 큰 착각을 할 수 있게끔 말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의 차이는 옛날부터 스스로 알고 있었다. 단지 부정당하고 존중받지 못했을 뿐이지.
내가 어딘가에서 그만두었던 일들은 막상 해보니 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되었다든가, 실제로도 정말 재미가 없는 일이었다든가, 하다 보니 더는 흥미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무언가를 할 때에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편이었기에 언제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무언가를 그만두기 전에도 과연 그만두는 것이 맞는 일인가,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을 수없이도 거듭하곤 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너는 끝까지 해낸 것이 아니다."
"너는 결국 포기한 것이다."
"너는 현실에 패배한 거다."
라는,
나로는 살아보지도 못한 존재들의, 내 생각이나 고민의 깊이에 대한 존중이 없는, 그러니까 더럽게도 재수 없는-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평가들뿐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나의 단점은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틀린 결정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힘을 부여해 준다는 쪽에 있었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나는 어렸고, 그 어렸을 적부터 내 주변에는 나를 도와주거나 가르쳐 줄 사람이 부재했다.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어른들의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변하는 아바타로 살아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쉽게 말하면 그냥 주변에 도움 되는 놈들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게 가족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아니면 선생을 비롯한 어른들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냥 무시해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도 그만이었을 텐데...
유난히도 그걸 못하는 나는 마치 이게 또 무슨, 판소리의 다음 장이라도 이어나가는 소리꾼이라도 된 것 마냥,
그러니 이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스스로 심사하고 숙고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인들의 의견이 객관적 입장의 사실 정보일 것이라는 착각으로 말미암은 존재 파멸의 비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그들은 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면서 그냥 아무렇게나 싸질러대고 있었던 건데.
그러다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견뎌낼 수 있다고 했던 일들이, 그리고 실제로 견디고 버텨왔던 일들이,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하나하나 들이, 정말로는 나를 갉아먹고 파괴하며 조각조각 찢어버려 나를 더는 날 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끝까지 버티고 견뎌야 한다'고, '너의 약점인 끈기를 극복해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이며 절망을 일삼던 하루하루의 발버둥들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