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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재 Feb 12. 2024

웹소설 작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끈기와 포기

포기하지 않고 집요한 도전 정신을 발휘할 때 필요한 '끈기'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한 발짝 물러서야 할 때 필요한 '포기'


같이 엮기에는 끝과 끝에 있는 두 단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에게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한 것 같다.


작품 하나가 완성되는 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엉덩이가 무거워야 작가로 살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루아침에 뚝딱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기에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 고되더라도 참고 견뎌내야 하고, 때로는 글쓰기가 쉽게 풀리지 않아 며칠 내내 진도가 안 나가더라도 버텨낼 줄 알아야 하고,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와도 다음 작품을 쓸 수 있게 빨리 털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로 존버정신, 끈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끈기라는 단어 하나에 눈이 어두워져서 무엇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곤 한다.


출간 계약으로까지 순탄하게 진행이 되지 않을 때가 가장 대표적인 예인 것 같다. 많은 지망생들이 어떻게든 출간 자체에라도 의의를 둬보고자 난생처음 듣는 이름의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악명이 자자한 출판사인 줄 알면서도 투고한다. 스스로를 희망고문하면서.

그러다 보면 눈이 어두워진다. 처음부터 뭔가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져도 으레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버틴다. 이것이 끈기라고 믿으면서.

그러다 서서히 좌절하기 시작하고 문제의 화살을 본인에게 돌려 한없이 자책하고 작아지기 시작한다.

분명히 다들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도 그제야 그들의 말이 맞았구나 한 번 더 후회하고 또 자책한다.


그리고 포기를 못 했던 탓에 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길 자체를 아예 포기하게 되어버린다.


그럴 바에 안 되는 작품은 빨리 인정하고 포기하는 게 낫다. 우리는 평생 한 작품만 쓰고 은퇴할 게 아니니까. 그래야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다.


참 희한하게 남들에게는 하나 일어나기도 힘든 악재가 유난히 한 작품에 연이어 터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힘든 것이 표절당하거나, 표절로 오해받거나, 하지도 않은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서거나 혹은 출판사와 분쟁이 생기는 경우 등이다.

누구나 경력이 쌓이다 보면 그중 하나 정도는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이중 다수를 겪고, 심지어 그걸 한 작품에 몰아서 겪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하나 정도 겪은 작가들은 정말 수없이 많이 봤다. 안 겪어본 사람을 오히려 더 희소하다고 쳐줘야 할 판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겪어본 사람이라고 하면 그 폭이 확 줄어든다. 나보다 경력이 몇 배로 많은 엄청난 선배 작가님들이나 그렇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 작품에 여러 악재를 겹겹이 쌓아 겪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나밖에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내가 지지리 운이 없어서인 것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 더럽고 못해먹겠다 싶으면 빨리 중단하고 다음 작품을 위해 머리를 비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미련스럽게도, 그 작품을 너무 사랑해서 어떻게든 역경인지 구렁텅이인지를 넘고 출간해서 세상 밖에 내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버티면서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차라리 때려치워도 빨리 때려치웠으면 그중 몇 개 정도는 안 겪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후발주자들에게 늘 말하곤 한다. "진짜 작품이 더럽게 안 풀려서 너무 힘들다 싶으면 그냥 때려치우세요."

남일이라서 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잠깐 기분만 상하고 말겠지만, 그게 무슨 마음으로 하는 조언인지 이해한다면 오히려 듣는 이의 얼굴이 희게 질릴 것 같다.


그 작품은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순조로웠던 적이 없다. 무료 연재 때 반응은 정말 좋았으나 그뿐. 아직도 출간을 못하고 있는 천덕꾸러기에 계륵이다. 그보다 더 나중에 시작했던 작품들이 열 개가 넘는데, 가장 최근에 시작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출간했다.


출간을 해본 사람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 고통은 그러려니 넘길 수 있지 않냐고?


전혀.


진작에 포기했다면 그 작품에 쏟을 정신력으로 작품 하나를 더 썼을 것이고, 받지 않아도 되었을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몸이 훨씬 건강했을 것이다. 그럼 글이 더 잘 써졌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반부만 수십 번 갈아치우고 몇 년째 완성을 못하는 작품이 있다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악질 출판사에 휘둘리며 몇 년째 처음 기획한 것과 완전히 다른 원고를 억지로 쓰면서도 출간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내가 겪었던 것들도 충분히 답답하고 미련스러운데, 나보다 더 한 것 같아서 속이 상하고 갑갑하다.


포기해야 다음 작품에 발휘할 끈기도 길러지는 법이었다. 속이 뒤집어져도 아픈 손가락보다는 다음 안 아픈 손가락이 더 잘 된다. 아픈 손가락 되기 전에 빨리 인정하고 돌아서는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더라.


2년이 5년 되고 10년이 되기 전에 이제 그 작품을 놔줄까 하고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내가 보면서 화가 났던 그 사람들이 나보다는 더 빨리 포기하고 멍들지 않은 마음과 꺾이지 않은 날개를 갖고 글을 쓰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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