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을 내려놓지 못할 때
그만둬야 하는 일인데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책임이 있어서,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 빠지면 남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이 말들은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하지만 책임과 두려움은
말의 결이 비슷해서
자주 섞인다.
책임은
내가 맡은 몫을 끝까지 감당하겠다는 태도이고,
두려움은
그 역할을 내려놓았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겉으로는
둘 다 ‘계속함’으로 보인다.
그래서 구분이 어렵다.
차이는
그만두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드러난다.
책임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그만둔 이후에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쉬움은 있어도
스스로를 변명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두려움으로 붙들고 있는 경우에는
그만두는 순간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왜 어쩔 수 없었는지,
왜 지금은 안 되는지,
왜 아직은 때가 아닌지.
그만두는 선택보다
그만두고 난 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더 큰 이유일 때가 많다.
이때 우리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역할’을 붙잡고 있다.
이 역할이 사라지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야 할까.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그래서 그만두지 못한다.
책임은
역할이 끝나도 남지만,
두려움은
역할이 끝나는 순간
나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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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지금 내가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정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이 역할이 사라진 뒤의 나를
마주하기 두려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