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가치관을 표현으로 옮기는 일에 대하여
브랜딩을 하다 보면
비슷한 요청을 자주 듣게 된다.
눈에 띄게 만들어달라거나,
차별화되게 보이게 해달라거나,
조금 더 고급스럽게 정리해 달라는 말들이다.
겉으로 보면
표현의 문제처럼 들린다.
어떤 말이 적절한지,
어떤 톤이 맞는지,
어떤 방식이 더 좋아 보이는지에 대한 고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그 말들 뒤에 숨어 있는 질문은
대체로 하나로 모인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게 해 달라”는 요청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분명해졌다.
브랜딩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브랜드가 되려는 사람들은
이미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 삶 속에서 나름의 기준과 우선순위를 만들어왔다.
문제는 그것이 아직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통될 만한 표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없어서가 아니다.
정리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겨진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브랜딩의 시작은
창조가 아니라 해석에 가깝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반복해 왔는지,
어떤 장면에서 늘 흔들렸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차별화라는 말은
쉽게 겉모양의 문제가 된다.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해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고,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해
그 삶과는 맞지 않는 언어를 덧입힌다.
그 결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말은 그럴듯해졌지만,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간격은
오히려 더 벌어진다.
그래서 번역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번역은
원문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기 멋대로 바꾸지도 않는다.
대신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가장 적절한 언어를 찾는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되려는 사람이
이미 살아온 삶을 원문으로 두고,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태도를
사람들과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이 과정이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삶이라는 원문이
깔끔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순이 있고,
정리되지 않은 채 축적되어 있으며,
말로 설명해 본 적 없는 선택들이 섞여 있다.
그래서 번역자는
먼저 원문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이 왜 그 선택을 반복해 왔는지,
왜 어떤 말에는 유독 힘이 들어가는지,
왜 특정한 방식만은 끝까지 고집해 왔는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번역은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브랜딩은
속도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번역을 서두르면
의미가 빠진다.
의미가 빠진 말은
아무리 세련돼 보여도
사람들에게 오래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브랜딩을 포장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포장은
내용을 몰라도 할 수 있다.
번역은 그렇지 않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 문장도 제대로 옮길 수 없다.
그래서 이 일은
브랜드가 되려는 사람에게도
불편한 시간을 요구한다.
자신의 삶을
다시 원문처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말이 바뀌기도 하고,
오래 써오던 표현을 내려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다운 언어가 남는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다고 느낀 적보다,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삶을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다는 느낌을
더 자주 받는다.
그래서 브랜딩에는
창조의 감각 이상으로
번역의 태도가 필요하다.
과장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의미를 지켜내는 태도다.
그 태도가 없으면
브랜드는 눈에 띌 수는 있어도
사람과 오래 함께하지는 못한다.
결국 브랜드는
더 멋진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온 삶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