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어느덧,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책임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자라면 그래야 한다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 방식이
내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신혼 초,
우리는 2,500만 원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그마저도 여유가 없어
1,000만 원을 대출해
낡은 주택을 직접 리모델링해서 들어갔다.
그 집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었고,
나는 그 현실 앞에서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 증명의 방식은 단순했다.
돈을 버는 것.
더 벌어오는 것.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눈에 보이게 보여주는 것.
그래서 책임은
돌봄이나 분담이 아니라
성과에 가까워졌다.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버텨내는지가
곧 책임의 크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계속 조여왔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고,
다른 선택을 상상할 여유도 없었다.
책임은 점점
짐이 아니라
시험처럼 느껴졌다.
통과하지 못하면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험.
그렇게
책임은 자유와 얽혔고,
자유는 점점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의 책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보다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게 만들었다.
책임은 그렇게
삶의 기준이 아니라
나를 엄격하게 재단하는 잣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