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먼저 기준이 부딪히던 시간
아내와 가장 많이 부딪혔던 건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역할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돈을 벌 테니,
너는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 게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방식이라고.
특히 육아에 대해서
아내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함께 키우는 게 맞다고.
하지만 그 말은
그때의 나에게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버거웠다.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그 여유를 만들 방법도 알지 못했다.
아내는 말했다.
자기는 돈 때문에
나와 결혼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그건 아내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
세상을 믿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돈이 없으면 결국
모든 것이 흔들린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내 안에 너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인어른의 시선도
내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내가 막내딸이었고,
장인어른은
그 딸을 나에게 보내는 걸
많이 걱정하셨다.
나는 장남이었고,
친동생 하나에
이복동생이 둘이나 있는 집안이었다.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재혼해
또 다른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그 모든 환경이
장인어른에게는
걱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나를 못마땅해하신 건 아니었다.
다만
그 환경 속으로
막내딸을 보내는 일이
고생길로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나는 그 걱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절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돈 때문에 만큼은.
장인어른의 기대를 채우고 싶었고,
아내를 보호하고 싶었고,
스스로에게도
괜찮은 가장이라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그 마음들이
하나로 정리되지 못한 채
서로 얽히고설켜
나왔던 말들이
바로 그 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벌잖아.”
그 말은
사랑을 무시하려는 말이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내가 붙잡고 있던
유일한 방식에 가까웠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설명하는 언어가
너무 달랐다.
그래서 더 자주 부딪혔고,
더 많이 어긋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