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재능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노래를 하면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림을 그리면 칭찬을 받았다.
특히 학교에서는 그랬다.
음악 시간이나 미술 시간에
선생님들이 유독 나를 눈여겨보셨다.
하지만 집에서는 달랐다.
부모님은 내가 그쪽으로 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돈이 많이 들고 앞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였을까.
집에서는
잘해도 칭찬이 없었고,
그려도 반응이 없었다.
밖에서는 인정받는데
집에서는 조용한 그 분위기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고3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과로 가서,
공대 쪽으로 진학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는 길을
아무 고민 없이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딱히 싫어서라기보다
그 길이 너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에게 먼저 말했다.
미대에 가고 싶다고.
곧 아빠도 알게 되었고,
집안은 난리가 났다.
공부하기 싫어서 미술 하려는 거냐,
그럴 거면 공장이나 가라는 말까지 들었다.
많이 울었다.
그 말들이 너무 아파서라기보다,
내 선택이
이렇게까지 부정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엄마는 나와 함께
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예능 쪽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고,
미술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미술학원을 알게 되었고,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안이 들썩거릴 정도로
큰 소란이 있었던 사건이었다.
부모님과 크게 부딪혔고,
갈등도 깊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선택은
진로나 성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로 살아보겠다고
처음으로 선언한 순간에 가까웠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도망치기 위한 선택도 아니었다.
이 길이 아니면
나는 나를 계속 미루며 살 것 같다는
감각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선택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설명도 부족하고,
설득도 어렵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지금의 나는
그날의 선택 덕분에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선택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진짜 선택은
무언가를 얻겠다는 계산보다,
나답게 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날,
고3 어린이날 아침에 했던 선택은
나답게 살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