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 나던 열심이 내게 남긴 것들
대학 3학년 때였다.
학교 과제만 성실하게 해내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해진 기준을 충족시키는 일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작업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느껴졌다.
그 무렵,
친한 친구와 함께
캐릭터 동아리를 만들었다.
과제가 아니라
개인 작업을 하자고,
혼자 말고 둘이서
애니메이션을 한 번 만들어보자고.
학교 일정이 끝나면
밤이 시작되었다.
새벽 3시, 4시까지
우리는 토론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함께 그림을 그렸다.
무엇이 맞는지 확신은 없었지만
무엇이 재미있는지는 분명했다.
말하다가 다시 그려보고,
그리다가 다시 말하고,
결론이 나지 않아도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작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새벽 공기가 차갑고 개운했다.
그 공기의 감각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또렷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애송이들이었다.
풋내 나는 열정이었고,
결과물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하잘것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의 그 열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의 열심은
위로가 필요해서 한 것도 아니었고,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노력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완전히 몰입해 있었던 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경험,
무언가에 온몸으로 꽂혀 있던 상태.
그런 경험은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는다.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때의 열심은
결과보다 오래 남았다.
무엇을 만들었는지보다
어떻게 살아 있었는지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때로는 위로처럼 쓰이고,
때로는 공허하게 들린다.
하지만 어떤 열심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살고 있었다기보다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림의 현장앞으로
나를 생생하게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