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려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한동안
배려를 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상대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느라
내 감정은 늘 뒤로 미뤘다.
배려란 그렇게
조용히 나를 줄여가는 태도라고 믿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되는 건
더더욱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일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했고,
이해한다고 넘겼고,
내가 조금 더 감당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건 배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우는 방식에
더 가까웠다는 걸.
배려를 가장한 침묵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대신
나를 점점 소모시켰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와
서운함이 쌓여갔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감정은 더 복잡해졌다.
상대는
내 배려를 배려로 인식하지 못했고,
나는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정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배려는
상대를 위해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
나를 함께 남겨두는 일이라는 걸.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 수 없고,
내가 불편하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는 더 건강해질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배려를 다시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태도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괜찮지 않을 때
괜찮은 척하지 않는 것.
참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런 배려는
때로는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잃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배려를
예의와 경계가 함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존중하되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태도.
아직도
완벽하게 잘하고 있지는 않다.
여전히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도 있고,
참아버린 뒤에야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우지는 않겠다는 것.
예전의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