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행동하는 용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오래도록
용기를 오해하며 살아왔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고,
확신이 생긴 뒤에야
비로소 행동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
조금만 더 준비되면,
조금만 더 안전해지면,
조금만 더 명확해지면
움직이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삶은
그런 순간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선택들은
늘 불완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확신은 없었고,
두려움은 분명했으며,
실패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움직였다.
미대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도,
안정적인 길 대신 창업을 선택했을 때도,
돈보다 방향을 택했을 때도,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 순간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두려움을 안은 채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이렇게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두려움을 데리고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특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행동하는 용기’다.
생각하는 용기,
결심하는 용기,
다짐하는 용기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행동의 문 앞에 서면
대부분은 멈춘다.
행동은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쓰게 만들고,
관계를 바꾸고,
실패를 감당하게 만든다.
그래서 행동은
언제나 삶의 방향을 바꾼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움직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움직인 뒤에야
준비가 시작되었다.
용기를 낸 뒤에
실력이 따라왔고,
행동한 뒤에
기준이 선명해졌으며,
선택한 뒤에야
내 삶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기다린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신이 생긴다고 해서
삶이 자동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용기를 미래형으로 두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나는 이제
행동하는 용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두렵더라도
움직이는 쪽을,
안전하진 않더라도
내 삶에 가까워지는 쪽을.
그 선택이
언제나 옳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만은
나는 이미 여러 번
증명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