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에 대하여
나는 내 삶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눈에 띄는 결과가 없던 시기에도
나는 멈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속도가 나지 않는 대신
나를 갈고닦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기술을 익히고,
생각을 정리하고,
관점을 넓히고,
말을 다듬고,
일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나는 시간을 써왔다.
겉으로 보면
느려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급해지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당장 결과를 내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깊이를
먼저 키우고 싶었다.
지연처럼 보였던 시간은
사실
준비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
내 전성기를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흔 중반을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배울 게 많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내 안에 남아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의 속도가
나를 늦추고 있다는 생각보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
더 크다.
능력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는다.
오래 쌓인 시간 위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시간을
나는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아직도 늦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지연이 아니라
축적이다.
도착을 미루는 시간이 아니라
도착했을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만드는 시간.
나는 지금도
그 시간을 살고 있다.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고,
아직 끝내지 않았고,
아직 꺼내지 않은 것들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
이건
뒤처짐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