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 대하여
오해는 어떻게든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말을 더 하면 풀릴 거라 믿었고,
맥락을 설명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면
설명부터 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게 있다.
오해는
설명으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타인을 본다.
설명을 듣고 판단을 바꾸기보다
이미 가진 인상 위에
새로운 말을 얹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어떤 오해는
아무리 말을 보태도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
나는 한때
오해받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느꼈다.
내가 말을 부족하게 했나,
태도가 애매했나,
더 잘 보여줬어야 했나
혼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나를 정리하고,
말을 고르고,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
나를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왔던 셈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나를 보호하지도,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오해를
풀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오해를
풀 필요도 없다.
아무리 설명해도
바뀌지 않는 인식 앞에서
계속 말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
자기 소모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오해에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류의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선별이다.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쓰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행위다.
물론 여전히
오해는 남는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오해들까지
모두 짊어지고 갈 생각은
없다.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이해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해를
모두 바로잡으려 애쓰던 시절보다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가볍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은 지점이 생겼고,
설명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나의 결이
선명해졌다.
오해는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오해에
내 삶의 방향까지
말려들지 않도록 할 뿐이다.
나는 이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은 오해들과 함께
나답게 차근차근
내 삶을 계속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