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함에 대하여
서른 살 무렵이었다.
본격적으로 브랜딩 일을 시작하고,
대학 동문 몇 명을 만났던 날.
그들은 이미
결혼을 일찍 했고,
집이 있었고,
차를 몰고 왔으며,
사무실도 임대가 아니라
자기 전물로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누구는 생활의 다음 단계를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사무실도 없었고,
차도 없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
내가 너무 작아진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날 처음으로
무력하다는 감각이
몸에 와닿았다.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미 다른 생애 단계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아직 출발선 근처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무력함은
실패에서 오지 않았다.
비교에서 왔다.
그들이 이룬 것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이
더 크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비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들까지
한꺼번에 끌고 왔다.
태어난 환경,
집안의 자원,
결혼의 시기,
이미 누적된 시간들,
그리고
자산이라는 형태로 굳어버린 결과들.
그날 처음으로
나는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의욕이 꺾였다.
뭔가를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아무리 애써도
저 지점에는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다.
그때의 나는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계속 움직이긴 했지만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나는 그 장면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의 무력함은
내가 부족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찾아온 감각이었다는 걸.
태생적으로 불평등한 환경과
이미 짜여 있는 사회 구조,
내가 아무리 애써도
되돌릴 수 없는 조건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질문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같은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지 않게 되었다.
비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비교가
나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게 되었다.
무력함은
나를 주저앉히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여전히 늦었고,
여전히 가진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속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게
그 무력한 순간이
내게 남긴
유일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