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에 대하여
두 번째 회사를 시작할 때였다.
같이 동업했던 형님은
내게 형이었고,
나는 그 관계가
일보다 먼저라고 믿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형동생으로 쌓아온 시간이
사업 안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는 말했다.
“놀이는 이제 끝났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각오를 다지자는 말쯤으로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그 말은
관계의 종료 선언이었다.
형동생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나를 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이후로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내가 잘하던 영역까지
하나씩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그 평가에는
이상하게도
늘 깎아내림이 따라붙었다.
“그건 누구나 한다.”
“생각보다 깊지는 않다.”
“대기업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말도 들었다.
“네가 원래 하던 판은 이제 끝났다.”
“넌 여기 아니면 이 정도 급여도 못 받는다.”
그 말들은
능력에 대한 평가처럼 보였지만,
실은
나의 선택지를
미리 잘라내는 말들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게 ‘날개꺾기’라는 걸.
상대를 무능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고,
결국
통제 가능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방식.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말이 줄었고,
확신이 사라졌고,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형동생 관계를
우리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었다.
돈 앞에서도
사람은 남을 거라 믿었고,
신뢰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돈이 오가고,
지분이 정리되고,
권한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에게
관계는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믿어왔던 것보다
훨씬 냉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돈 앞에서는
형동생도,
신의도,
함께 보낸 시간도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순진했던 걸까.
아니면
사람을 너무 쉽게
신뢰해 버린 걸까.
지금도
그 답을
완전히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경험 이후로
나는
신뢰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뢰는
말로 쌓이는 게 아니라,
시간과 행동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관계는
의도보다
반복된 선택으로만
증명된다는 걸 배웠다.
믿었던 신뢰가 무너질 때
나는 한동안
세상이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균열 덕분에
이제는
어디까지가
내가 내어줄 수 있는 선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 신뢰만큼은
이제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