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이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by 이키드로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역할로 먼저 불리기 시작했다.


대표,

남편,

아빠,

멘토,

코치 등.


그 말들은 모두 틀리지 않았고

그 역할들을 나는 꽤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

문제는

그 역할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정작 ‘나’라는 존재는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대표로 있을 때는

늘 괜찮은 판단을 해야 했고

흔들리면 안 됐다.

불안은 숨겨야 했고

확신 있는 얼굴을 유지해야 했다.


남편으로 있을 때는

가정을 지켜야 했고

아빠가 된 이후에는

나의 감정보다

아이들과 집안의

안녕이 먼저였다.


그 모든 역할을 해내고 하루가 저물 때면

하루가 끝난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연극을 마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그 역할 그대로

다음 역할로 이동하는 느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능하고’ 있는 걸까.


역할은 필요하다.

사회는 역할로 굴러가고

가정도, 일도

역할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할이

내 정체성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다.


그걸 막아주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조용히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태도였다.


직업과 무관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지금의 나에 안주하지 않고

더 성장하고 싶다는 갈증.


그 목소리들은

당장 밥을 벌어다 주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쓸모 있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욕구들을

“나중에 해도 되는 것들”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그걸 무시할수록

역할은 점점 단단해지고

나는 점점 납작해졌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나는 역할을 내려놓기보다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대표이기 전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으로서의 나.

아빠이기 전에

사유하고 기록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의 나.


역할이 나 자신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는 그 목소리들을

작게라도

계속 살려두기로 했다.


역할을 버린 건 아니다.

다만

역할이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역할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역할들이

내 내면을 침묵시키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도록 두지 않는다는 것.


역할은

삶을 돕는 도구이지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기 전에

역할 없이도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역할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