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함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를 꽤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미루기도 잘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망설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해왔던 것들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이어져 있었다.
브랜딩,
디자인,
글쓰기,
그림.
중간에 크게 멈춘 적이 없었고
방향이 바뀌었을 뿐
그만둔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혔던 건
게으름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너무 높이 잡아두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나를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방식.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준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태도에 가까웠다.
부모님의 나를 키우는 방식은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방목에 가까웠다.
내 삶은 내가 결정했고
그 선택의 결과도
내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산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내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의식만이 내속에 존재했다.
하나 분명했던 건
부모님보다는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잘 산다’는 기준이
돈만은 아니었다.
얼마를 벌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는
내가 붙잡고 싶은 핵심 목표가 아니었다.
대신
내 실력이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을 남겼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 기준을
아주 이른 나이에 잡아버렸기 때문에
시작한 어떤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내 삶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힘들었던 적은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감정은
이상하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돈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돈 때문에 흔들리지도 않았고
돈 때문에 버티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면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었다.
속도는 느렸을지 몰라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를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한 기억들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나의 완성되지 않은 이 불완전한 느낌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집요하게
하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