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 대하여
나는 사회가 흘러가는 구조에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다.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치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같은 문제에는
관심이 전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지 않았다.
그건 외면이라기보다
성향에 가까웠다.
나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보다
사람 자체에 먼저 시선이 가는 쪽이었고,
방법이나 답보다 질문을 던지는 일에
더 익숙한 아이였다.
그래서 인문과 철학,
예술 같은 영역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무엇이 맞는지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는 게 더 중요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람’ 그 자체에 더 관심이 있고
늘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브랜딩이라는 일도
어쩌면
세상을 읽기보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을 중요하 생각하다 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내 브랜딩철학을
존중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어떤 말에 흔들리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그 질문들은
매출 구조나 시장 논리보다
내게 훨씬 중요했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통상적으로 말하는 ‘현실적인 것’에는
큰 흥미가 없다.
무엇이 진짜 돈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성공하는지,
돈으로 증명되는 성공의 서사에는
지금도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꽤 전형적인
아티스트 성향의 사람이다.
문제는
그 성향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효율보다 의미를 먼저 따지고,
확장보다 깊이를 고민하고,
속도보다 방향을 붙잡는 태도는
사업 세계에서는
종종 단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그 때문에 손해를 본 적도 있고,
답답한 사람으로 보였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사업가처럼 보이기 위한
코스프레를 할 생각은 없다.
(두 번째 회사에서 성공코스프레는
충분히 질릴 만큼 겪었기에)
내가 아닌 모습으로
성공하고 싶지도 않고,
나답지 않은 방식으로
버텨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세상의 구조를 모른 척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기보다,
그 구조 이상으로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얘기다.
눈치 보지 않고,
내 색깔을 흐리지 않고,
내가 잘 보는 것과
내가 잘 묻는 것들을
계속 붙잡으면서.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선명한
눈앞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