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기준이 매번 바뀔 때

취향이 판단을 대신하는 브랜드

by 이키드로우

회의를 할 때마다 디자인 이야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지난번에 정리한 방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화면을 열면 또 다른 의견이 나옵니다.

“이번엔 조금 더 감각적으로 가볼까요?”

“아니, 그래도 너무 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결론은 늘 비슷합니다.

“일단 이번 건은 이렇게 가보죠.”


디자인 기준이 매번 바뀌는 이유는

의견이 많아서도,

디자이너의 역량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판단의 기준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취향의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는 예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들 사이에서

무엇이 브랜드다운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지만 남습니다.

결정은 전략이 아니라

분위기와 피로도에 의해 내려집니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디자인은 쌓이지 않습니다.

항상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다시 시작됩니다.

디자이너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고,

기획자는 설명을 포기하게 되며,

대표는 매번 최종 판단을 떠안게 됩니다.

겉으로는 유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디자인 기준이 흔들리는 조직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수정에 쓰이는 시간,

설명을 반복하는 에너지,

이미 했던 결정을 다시 검토하는 피로감.

이 비용은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의 집중력을 서서히 갉아먹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면

창의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거절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시도 자체가 조심스러워집니다.


브랜드에서 디자인 기준이란

잘 만들기 위한 규칙이 아닙니다.

덜 고민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디자인이 맞는지 틀린 지를

매번 토론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기준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생기면

디자인 논의는 “이게 예쁜가?”가 아니라

“이게 우리 브랜드인가?”로 바뀝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취향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입니다.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판단의 축이 같다면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로 모입니다.


디자인 기준은

외부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사람이 늘어나고,

역할이 나뉘고,

결정권이 분산될수록

기준은 더 중요해집니다.

기준이 없는 브랜드는

사람 수만큼 흔들립니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을 통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취향이 판단을 대신하지 않도록

판단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 매번 바뀌고 있다면,

지금 바꿔야 할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