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없는 나만의 자리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비교의 방향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디자인 회사들이
‘브랜딩’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장으로 우후죽순 들어오는 장면들을 보면서였다.
누가 더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지,
누가 더 트렌디한 시안을 내는지,
누가 더 감각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지.
그 비교의 중심에는
늘 디자인이 있었다.
물론
디자인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로
브랜딩의 우열을 가리는 구조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디자인을 잘하는 건
음식점에서
음식이 맛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당연히 갖춰야 할 조건이지,
그 자체가
브랜드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비교판에서
조금씩 내려오게 됐다.
디자인 중심의 브랜딩 경쟁은
내가 오래 서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게 있었다.
메시지였다.
클라이언트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도록 돕는 일,
그들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
그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브랜드 구조에 맞게
정리 정돈해 주는 일.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고객과 소통 가능한
언어와 디자인으로
끝까지 완성해 주는 것.
나는 그 과정 전체가
브랜딩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의 무게중심을
디자인 바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비전과 미션,
태도와 철학,
브랜드가 약속하는 혜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코어.
그 지점을
일의 중심에 두었다.
그 순간부터
비교는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누가 더 잘 그리는 지보다
누가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지가 중요해졌고,
누가 더 화려한 결과물을 내는지보다
누가 더 본질에 가까이 가는지가
일의 기준이 됐다.
그 기준 안에서는
경쟁할 대상이 많지 않았다.
방향이 달랐고,
중심이 달랐고,
결과의 정의도 달랐다.
그래서 비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경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다만
비교할 이유가 없는 구조로
일을 옮겼을 뿐이다.
디자인 실력으로
순위를 매기는 판에서 내려와,
브랜드의 핵심을
얼마나 깊이 다루는가라는
다른 질문을 선택했다.
그 이후로
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누구를 이기고 있는지보다
이 일이
클라이언트를 얼마나
자기답게 만들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지금 돌아보면
경쟁을 피한 게 아니라,
비교의 기준을 바꾼 셈이었다.
디자인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본질을 중심에 둔 경쟁.
아니,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래서
비교는 줄었고,
일은 더 단단해졌다.
그게
내가 이 일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