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하여
큰돈이 오가는 거래,
그러니까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그때 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그 일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땅을 파는 사람과의 관계,
부동산과의 관계,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만난
건축 시공사와의 관계까지
모든 게 돈과 이해관계로 얽힌
연속된 선택의 과정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가능하면 갈등을 피하려 했고,
상대의 입장을 맞추려 애썼다.
지금 생각하면
호구에 가까운 태도였다.
어려서부터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평화하라”는 말씀이
늘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날카로운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한 발 물러섰고,
상황을 좋게 해석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건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었다.
머리로는
의미 있는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 선택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보게 되었다.
큰돈이 오가는 순간 앞에서
사람들은
단 1원도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이미 내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냥 착한 사람처럼
물러서 주는 것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는 느낌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상황에서는
좋게 좋게 넘기는 게 아니라
싸울 상황에서는 싸웠어야 했다.
갈등을 피하는 것과
자기를 지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평화는
늘 양보하는 태도가 아니라,
기준을 지킬 줄 아는 태도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땐
어렸고,
순진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굳이 모든 상황을
좋게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매번 이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건
미덕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애써 긍정하지 않는다.
필요한 갈등은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걸
늦게나마 배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