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

그림에 대하여

by 이키드로우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아마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아직

그림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나를 끌어당기는지까지

깊게 정리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삶에서

나를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데려가는 건

그림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글도,

브랜딩도,

디자인도

각각의 자유로움을 준다.


하지만 그림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자유다.


온전한 자유.

그 안에서는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할도 없고,

목적도 없고,

평가도 없다.


잘해야 할 이유도,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리는 행위 자체로

충분해지는 시간.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다.


그게

나다움을 유지하는 가장 순수한 방식이고,

내가 나를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속에 태초의 씨앗 같은 게 있다면

그건 아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일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으면서

그저

나로 존재하는 상태.


그림을 그릴 때

나는 그 상태에

가장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누가 보든,

아무도 보지 않든

상관없이.


낯선 행성에서 : 이키드로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