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신뢰에 대하여
돌아보면
내 삶에는
외부로부터 확신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던 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응원받지도 않았고,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며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왜 굳이 그 길을 가느냐,
그게 되겠느냐는 질문을
더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
가장 오래된 장면을 떠올려보면
고3 5월이 생각난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하겠다고 결정했던 시기.
그것도
이미 진로가 거의 정해진 것처럼 보이던
고3의 한가운데였다.
그 선택의 이유를
지금 와서 돌아보면
꽤 분명하다.
그때의 나는
내 속에 있던
가능성의 씨앗을
무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음악과 미술을 할 때
마음이 설레고,
완전히 몰입되던 그 감각.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던 내면의 소리.
어리다면 어렸던 그 나이에도
나는 그 소리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물론 두려움은 있었다.
내 생각과 다르게
내게 정말 가능성이 없다면?
그 씨앗이
끝내 발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수없이 오갔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 가능성을 한 번쯤은
믿어보자고 선택했다.
자기 신뢰란
처음부터 확신에 차 있는 태도가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기 안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나는 그때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의 삶에서도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비슷한 태도를 반복해 왔다.
지금은 서툴고,
지금은 부족하고,
지금은 설명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방향이 나를 망가뜨리지는 않을 거라는
아주 최소한의 믿음.
그 믿음 하나를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흔들린 적은 많았다.
의심하지 않은 날보다
의심한 날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는 나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의 말을 듣되
내 감각을 지우지는 않았고,
현실을 고려하되
나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내가 가진 자기 신뢰의 전부였다.
잘될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못 되더라도
나를 잃지는 않겠다는 믿음.
그래서 나는
유행을 좇지 않았고,
속도를 무리하게 올리지 않았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려 애쓰지도 않았다.
자기 신뢰란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심긴 씨앗을
끝까지 함부로 꺾지 않는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한 번 믿고 가보는 용기가
내 삶에는 늘 있었다.
그건
지금의 나에게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아무도 확신해주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내 가능성을
완전히 의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자기 신뢰는
내 삶을 지탱해 온 가치로서
충분히 그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