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선택이었다

by 이키드로우

이 편지는

갈등에 대한 나의 입장을

분명하게 남기기 위해 쓴다.


나는 꽤 긴 시간

갈등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다.

부딪치지 않고,

날을 세우지 않고,

서로 불편해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거든 평화하라’는 말을

나는 오래도록

‘싸우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조용히 넘기려 했고,

상대의 입장에 맞추려 했고,

내가 조금 더 참으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관계의 평화가 아니라

갈등을 미뤄둔 상태에 가까웠고

내속의 화를 쌓는 방식이었고

상대에게 호구로 남는 방식이었다.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은 문제는

결코 스스로 사라지지 않았다.

불편함은 쌓였고,

쌓인 감정은 침묵이 되었고,

침묵은 결국

관계마저 벌려놓았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안에서는 계속

답답함을 동반한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


그때부터 나는

평화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일어나야 할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진정한 화해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에

더 가깝다는 걸.


나는 더 이상

갈등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갈등은

서로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외면하면

관계는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한쪽이 계속 닳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싸우지 않기 위해 애쓰기보다,

싸울 가치가 있는지를 묻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고 동시에

나를 지키기 위한 갈등인지,

선을 분명히 하기 위한 충돌인지.


말해도 되는 갈등은 말하고,

아무리 말해도

존중받지 못하는 갈등에서는

그냥 물러서기로 했다.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갈등을 회피하지는 않기로 했다.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일어나야 할 일을 드러내고도

상대와의 관계, 그리고

나를 잃지 않는 상태다.


혹시 네가

갈등을 두려워하며

자꾸 자신을 뒤로 미루고 있다면,

그건 네가 예민해서가 아니다.

그 시점은

삶이 네게 갈등을 마주할

용기를 요청하는 시점이 왔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제

갈등을 무작정 덮어두려 하지 않는다.

그 갈등을 통해

지켜야 할 것이 있는지,

그래서 그 갈등을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하는지

혹은 아무런 득이 없는 갈등이라

그 갈등으로부터는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야 할 것인지를

분별하려 한다.


마주해야 할 때는 용기 있게 마주하는 것,

그것 역시

내가 선택한

평화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