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러야 할 감정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
분노는
대개 다루기 어려운 감정으로 취급된다.
참아야 하고,
가라앉혀야 하고,
되도록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분노는 관계를 망치고,
판단을 흐리고,
괜한 문제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분노를 느끼는 순간마다
그 감정을 눌러두려 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했고,
좋은 쪽으로 이해하려 했고,
애써 괜찮은 사람으로 남으려 했다.
하지만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눌러둘수록
다른 형태로 튀어나왔다.
말끝에 남고,
태도에 묻어나고,
결국 나 자신을 더 지치게 했다.
그때 알게 됐다.
분노는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라는 걸.
분노가 올라올 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개 이유는 비슷하다.
선을 넘었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내 기준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분노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분노를 무시하면
기준도 함께 흐려진다.
물론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하지만 분노를 느끼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분노 다음이다.
이 감정이
내 삶의 무엇을 지켜내라고 말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이 감정을 멈춰야 하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는 일.
분노를 해석하지 못하면
사람은 둘 중 하나로 기운다.
모두 삼키거나,
모두 터뜨리거나.
둘 다
나를 지키는 방식은 아니다.
나는 이제
분노를 느끼는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지금 무엇이 건드려졌는지,
이 감정이
어떤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 질문을 통과한 분노는
폭력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관계를 부수는 힘이 아니라
선을 그을 수 있는 힘이 된다.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잘못 다루면 문제를 만들지만,
제대로 해석하면
나를 지켜준다.
분노를 없애려 하지 않고
분노가 가리키는 방향을 읽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것이
내가 분노를 대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