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야 할 상태가 아니라, 나를 만나는 시간
고독은
보통 불편한 말로 다뤄진다.
외로움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야 할 상태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고독은 부족함의 증거이고,
인간관계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믿었다.
하지만 삶을 지나며
고독을 다시 보게 됐다.
고독은
외로움과 같은 얼굴의 단어가 아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고독할 수 있고,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고독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은
아무도 곁에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잠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하게
다시 듣는 시간에 가깝다.
관계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쉽게
자기 자신을 놓친다.
역할이 늘고,
기대가 쌓이고,
설명해야 할 말들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고독은 필요해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가 아니라,
본연의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사람은 끊임없이
소음 속으로 숨어든다.
사람, 일, 자극, 관계로
자신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나를 채울수록
내면의 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고독은
비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정리하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까지 괜찮고,
어디부터는 아닌지를
다시 가늠하는 시간.
그래서 고독은
성숙의 조건이 된다.
고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관계를 가볍게 소비하지도 않는다.
고독을 견딜 수 있을 때
관계는 더 건강해진다.
의존이 아니라 선택으로 남고,
결핍이 아니라 여유로 이어진다.
고독은
도망쳐야 할 시간이 아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남을 수 있다.
그래서 고독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나를 만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