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는 것과, 해내는 것 사이의 거리
절제는
무언가를 하지 않는 태도로 설명되곤 한다.
욕망을 조절하고,
충동을 멈추고,
선을 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루는 능력.
이 정의는 맞다.
그리고 나는
이 정의를 이해하지 못해서
절제가 어려운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해내는 것 사이에
늘 거리가 있다는 데 있다.
여러 가치들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절제다.
생각으로는 분명한데,
막상 상황 앞에 서면
그 생각은 쉽게 밀린다.
각종 선택의 순간마다
내 진짜 욕망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솟구친다.
말하고 싶은 마음,
지금 당장 얻고 싶은 것,
조금만 편해지고 싶은 유혹.
그 앞에서
우선순위를 떠올리며
절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절제를 의지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됐다.
절제는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태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연습해야 하는
훈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치들은
어느 순간 몸에 배는 느낌이 있는데,
절제는 그렇지 않다.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면
절제는 늘 새롭게 요구된다.
그래서 절제는
특별한 사람이 잘하는 덕목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자주 마주하는 사람이
계속 연습해야 하는 기술에 가깝다.
절제가 필요한 순간은
욕망이 약할 때가 아니라,
욕망이 가장 솔직해졌을 때다.
그때 절제는
나에게 묻는다.
이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족시키는지,
아니면
앞으로의 나를 지켜주는지.
절제는
지금의 욕망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 욕망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일이다.
그래서 절제는
늘 어렵다.
그리고
그래서 더 필요하다.
나는 이제
절제를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절제를 계속 연습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우선순위를 떠올리는 연습,
지금의 감정과
지켜야 할 방향을
구분하는 연습,
한 박자 늦추는 연습.
절제는
완벽하게 해내는 순간보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순간들로
조금씩 쌓인다.
그래서 절제는
나를 단번에 바꾸지 않는다.
다만
나를 쉽게 잃지 않게 만든다.
그 정도면
절제라는 가치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