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선택
기다림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아니다.
기다림은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어도
움직이지 않기로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보통
기다림을 무기력함과 혼동한다.
결정하지 못해서,
용기가 없어서,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멈춰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기다림은
정반대다.
기다림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선택할 수 있는 태도다.
아무 생각 없이 멈춘 건
기다림이 아니다.
아무 방향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기다림은 아니다.
기다림에는
분명한 이유와 기준이 필요하다.
왜 지금은 아닌지,
무엇을 더 보고 싶은지,
어디까지 확인해야 움직일 수 있는지.
그게 정리되지 않으면
기다림은 금방 불안으로 바뀐다.
기다림이 어려운 이유는
시간 때문이 아니다.
주변의 속도 때문이다.
다들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가만히 있는 선택은
괜히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결정을
결단력이라고 착각한다.
빠른 선택이
언제나 옳은 선택인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기다림은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라,
결정을 망치지 않기 위한 태도다.
모든 타이밍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고,
확인해야 할 마음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움직여도 무너지지 않는다.
기다림은
가능성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아니다.
불필요한 가능성을
조용히 걸러내는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기다림은
조급함과 싸우는 일이다.
결과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두려움.
그 감정들 위에
기준을 다시 올려놓는 연습.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가 아닌 것을
기회처럼 붙잡지 않는다.
나는 이제
기다림을
소극적인 태도로 보지 않는다.
기다림은
삶의 속도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택이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늘 헛된 건 아니다.
때로는
가장 많은 것이 정리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다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움직이지 않아도 될 이유가
충분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