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아직 불완전한 나를 아는 태도
관대함은
타인을 이해해 주는 능력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서
시작된다.
내가 관대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속에도
누군가에게 관대함을 받아야만 하는
불완전함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실수하고,
고쳐가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부족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과정 한가운데에 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시작했고,
누군가는 오래 헤매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여러 번
넘어져본 사람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관대함은
이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지금의 미숙함이
그 사람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재단하거나,
단정 짓거나,
한 장면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 여지는
상대를 무조건 이해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모든 행동을 용납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사람을 한순간의 모습으로
닫아버리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관대함은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은
타인의 불완전함을
쉽게 견디지 못한다.
나는 내가
관대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여전히
관대함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안다.
그래서
타인을 향한 관대함은
결국
나를 향한 이해에서
흘러나온다.
관대함은
사람을 좋게 보는 성격이 아니다.
관대함은
불완전한 존재들끼리
같은 삶의 시간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 태도가 있을 때
관계는 조금 덜 상처받고,
삶은 조금 덜 거칠어진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더 숨 쉴 공간을
내어줄 수 있게 된다.
관대함은
타인을 위한 미덕이기 전에,
불완전한 나로
계속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