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해심에 대하여

이해해 주는 것도 어느 정도의 선이 필요하다.

by 이키드로우

이해심 많음은

성숙함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했었다.


상대가 약속을 어기도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넘겼고,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나 보다 하고 정리했다.

굳이 따져 묻지 않는 태도가

관계를 원만하게 지켜내는 방법이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상황이 불편해져도

왜 그랬는지는 묻지 않았고,

다음에는 달라질 거라 생각하며

그런 상황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해한다는 명목 아래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처음에는

그 방식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크게 다툴 일도 없었고,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관계처럼 유지되었다.

나는 늘

“넓게 봐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는 점점

나 혼자만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상황은 늘 비슷했고,

다음에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해하며 넘겼고

상대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이해를 해주면서

괜찮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맘속에 앙금이 계속

쌓여가더라는 거다.

뭔가 잘 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내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제야

내가 하고 있는 게

이해인지,

아니면 그냥 참고 있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태도는 진짜 이해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든 부담과 손해를

그냥 내가 떠안고 있는 꼴이었다.


돌아보면

문제는 이해심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어디까지 상대의

잘못 또는 무례함 등을 받아들일지

나의 마지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상대의 형편을 알아주는 것과,

나에게 손해가 되는 행동들이

계속 반복되도록

아무 조건 없이 두는 건

전혀 다른 일인데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 결과

관계는 유지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관계도 흐릿해지고

내 마음도 같이 좀먹혀 갔다.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는

이해하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확인한다.

이건 한 번 넘길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지.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같은 상황을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고,

관계를 지키고 싶다고 해서

내가 계속 손해를 보며

내 기준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이해심을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건

사실 이해심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해라는 이름으로

아무 조건 없이

상대가 내게 폐를 끼침에도

그냥 받아들이는 습관이

내 속에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모든 걸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까지는 받아들이고,

어디부터는 분명히 말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한다.


어른의 이해심이라는 건

끝까지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범위와 이해가 필요 없는 범위를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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