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마음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린
어릴 때
모든 놀이는
목적이 없었다.
구슬치기,
말뚝박기,
땅따먹기,
주먹야구
등등…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배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했다.
하다 보니 시간은 잘 갔고
재미있었기에 계속했다.
어떤 놀이든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서
일상에서 놀이의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기 시작했다.
이걸 해서 뭐가 남는지,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실력이 늘지는 않는지.
재미보다
내가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에 상응하는
결과치를 더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삶 속의
놀이 개념은 점점 줄어들었고,
남아 있던 취미들 조차
일을 닮아가고 있었다.
취미는
곧잘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쉬는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쓰려는 마음이 앞섰다.
대충 즐기는 일에는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잘 놀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해도
곧잘 멈추거나 주춤거렸다.
이걸 계속해도 되나,
내가 지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취미든 놀이든
내 삶에서 자취를 감췄다.
놀이의 개념을 닮은 취미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들은
나를 즐겁고 신나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괜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놀이의 감각, 개념을 잃어버리자
삶에서 숨 쉴 틈도 함께 사라졌다는 걸.
놀이는
게으름이 아니다.
삶을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잘해야 할 필요도 없고,
끝까지 갈 필요도 없는 자유로움.
그 놀이개념 안에서
나의 삶은 늘 좋은 의미로
가벼워짐을 느꼈다.
요즘의 나는
놀이를 다시 연습하고 있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일,
끝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은 것들.
그저 하는 순간이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놀이는
삶을 흐트러뜨리는 게 아니라,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든다.
버티기만 하던 하루에
숨을 넣어준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건
놀이하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아무 쓸모없어 보여도
즐거워할 수 있었던
그 순수함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놀이가 가진 순수한
감각이 돌아올 때
삶도 다시
조금은 숨 쉴만해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