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게 된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어느 순간 많이 쓰이기 시작하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가 출현해서 유통된 지는
내 기억에 의하면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진작에 이 개념을 알았다면
그때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을.
난 그때 내가 당하던 것이
가스라이팅인 줄도 모르고
그냥 계속 당하고만 있었다.
2016년, 두 번째 회사를 창업했다.
그것도 내가 인생의 멘토라 여기던
10살 정도 웃어른이던 형님과.
너무도 긴 이야기라
모든 썰을 다 풀 수는 없고
오늘 하고 싶은 얘기만 해 보겠다.
동업이 쉽지 않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워낙에 내가 따르던,
아빠보다 더 따르던 사람이었던지라
나는 믿고 공동창업을 강행했다.
강행이라 한 것은
아내를 포함해 주변에서
굳이 왜 공동으로 하냐,
혼자도 잘하는데라는 말들을 뱉으며
꽤 많은 사람들이 공동창업을 말려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너무 안 맞았다.
돈에 대한 개념, 사람을 다루는 방식,
회사의 비전 등,
어느 하나 맞는 게 없었다.
돈에 지나치게 치우친 그분의 방식은
나와 전혀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가스라이팅이었다.
나중에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
내가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당했던 것이
단순한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조직에서 자주 사용되는
‘날개꺾기’라는 가스라이팅이었다.
공식용어는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 조직, 심리적 맥락에서
쓰이는 용어로,
누군가가 더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의욕, 자신감,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꺾는 행위라고 한다.
주로
조직이나 관계에서 위협이 되는 사람에게,
실력, 재능, 열정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노골적인 공격이 아닌 미묘한 방식
(너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같은 수식을 붙이며)으로
실행된다.
‘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너 이거 되는 줄 알았는데, 안되네.’라든지
책임은 지우되 권한은 주지 않는다든지,
기대한다고 말하며 책임을 지웠다가
실망했다고 말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무서운 가스라이팅이다.
대놓고 때려 남게된 상처는 치료하면 되지만
날개꺾기는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날지 못하도록,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폭력보다 더 교묘하다.
그토록 믿고 따랐던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뱉었었는데,
결국은 돈 앞에서
관계고 뭐고 다 내던졌던 것 같다.
많이 어리둥절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세팅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같은
유치한 발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을 안고 살아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이
되려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날개꺾기의 진짜 시작점은
내가 그 사람에게 너무 많은
내 약점과 치부를 드러낸 지점이다.
조금 거리를 뒀었다면,
내가 너무 나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면
차라리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었으려나?
그나마 40이 되기 전 39에 일어났던 사건이라
그래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지,
뒤늦게 그런 일을 겪었다면
정말 큰 타격을 입었을 것 같다.
그 사건 이후
실제로 내가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까.
혹시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빨리 그 관계를 끊고
그냥 물러서기를 권장한다.
나를 소모하며 싸우기보다
나에게 날개꺾기 같은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것들과는
어떤 상종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