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나다움, 어떻게 찾아가 볼 수 있을까?
나는
계속 변화하는 존재다.
아니,
계속 변해야만 한다.
‘나다움’을 정의할 때
나다움이라는 것이
고정된 어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건 내가 아니야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정체성이 아주 잘 정돈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에 있어
융통성이 없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낳을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한다.
정체성은 끊임없이
확장되어야 한다.
나를 계속 확장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탐구해야 하는데,
이 탐구는 ‘생각‘과 함께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좀 더 나를 잘 탐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며
생각과 행동을 해볼 수 있겠다.
첫째, 지금 내가 가능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
내 능력치를 포함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적 상황,
외부적 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는 것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을 따져 드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삶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둘째, 한정된 돈, 시간, 에너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니, 내게 가능한 요소 중
포기할 것을 따져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 있는 목록보다
포기해야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이
우선순위의 관점에서는 더 중요할 수 있다.
셋째,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속할 수 있는,
내가 삶에서 추구할 가치를 찾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으로 시대는
‘문제해결사’와 ‘치유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어떤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우리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문제해결사가 되어 살아간다면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지,
치유자로 살아간다면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상처를 치유할 것인지
곰곰이 다져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나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지가
조금은 더 선명해진다.
나답게, 나스럽게 같은 말이
많이 쓰이지만
생각보다 나다운 게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서
나를 계속 탐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안의 모순(내가 믿고 있던 것과 다른
현실의 내 모습 같은)과 변화,
그리고 진화된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좀 더 자기 자신다운 것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