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쏟는 첫날이 되기를
2026년이다.
오늘은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뭔가 할 일이 있어 일어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눈이 그냥 떠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글을 쓰려 브런치를 켰다.
새해의 아침이라 해서
특별할 건 하나 없다.
늘 맞던 아침이고
늘 보던 어스름이다.
달라지고 새로워야 할 것은
내 마음의 태도뿐.
아직은 밤이 길다.
새벽 6시 40분인데도
여전히 밖은 캄캄하다.
인공적인 불빛이 거의 없는
시골의 아침은
유독 더 까맣다.
때로는
일찍 뜨는 해보다
긴긴밤의 느낌이 좋다.
고요한 정적 속에
홀로 깨있는 듯한
이 느낌을 누리는 것이 좋다.
도심 속의 이 시간은
밤의 긴 것과 관계없이
분주한 시간이겠지만,
이곳은 시골이라
이 시간에는 아주 고요하다.
오늘은 이곳저곳 들릴 때가 많다.
아빠집에 일단 먼저 들러야 하는데
사실 아빠는 거의
설과 추석 명절 때만 본다.
매일 부모님께 전활 걸어
안 부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리 자주 안부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불효자 같아
내심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그냥 이게 나인 것을 받아들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빠와 제대로 형성대지 못한
부자의 유대감을
‘효’라는 이름 아래
애써 ‘있는 척’ 하기 싫었다.
어제는 문득
1년에 두 번 보는 아빠의 얼굴,
이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였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럼에도
마음이 짠해진다던지
뭔가 울컥한다던지 하는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원래가 그리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친한척하기는 힘들다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새해의 아침은
늘 희망과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지만,
명절이라는 명분 아래
유대감이 짙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또 한 번의 ‘의식’ 같은-
에너지 충전이 아닌
에너지를 방전시키는
그런 행위를 또 하고 와야 한다.
나도 안타깝다.
엄마와 아빠에게
큰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친한 느낌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안타까움이다.
친한 척할수록
나는 더 에너지가 방전되는 사람이라
아닌걸 그런 척할 수가 없다.
두 번째 안타까움이다.
오늘은 물리적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새해 의식을 치르며
분주한 하루를 살게 되겠지만,
내 중심은
나만의 새해를 맞이하는 것에
의의를 둬 보려 한다.
뺏기는 것에 마음을 쏟지 말고
채울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쏟자.
글을 쓰는 동안
어둠이 걷히고 있다.
오늘도 새 아침이 다가온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쏟기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쏟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