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있어도 괜찮아지기

작은 정원에 작은 나무 한그루처럼

by 이키드로우

따뜻한

예가체프를

한 모금 들이킨다.


공복의 커피가

좋지 않다는 말들이 있지만

하루를 여는 아침시간에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스미는

맛있는 커피의 유혹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첫 모금을 마시면서

눈을 감아본다.


나를 주목할 사람도 없고

주목되지도 않는 자리에 앉았기에

커피 한 모금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동안 그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어도

부끄럽거나 민망하지 않다.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가 맛있다.


커피는 참

예민하고 신비한 물질이라

날씨, 온도, 습도,

원두 관리 상태, 입자의 굵기,

탬핑의 압력, 추출되는 시간과

물의 맛, 물의 온도,

추출하는 바리스타의 경험 등에

그 맛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서도

그 맛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수개월 만의

좋은 기분인 것 같기도 하다.


꼭 무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은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마음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며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엄격한 잣대를

잠시 내려두고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기로

작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겐 힘이 되고

누군가에겐 내가 삶의 이유가 됨을,

머리가 아닌 마음과 몸으로

조금은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날은

맑지 않고

약간 우중충하지만

공기는 청량하다.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의

나무 한그루는

벌서 봄을 머금고 있다.


약간 쓸쓸해 보이지만

외로워 보이진 않는다.


머지않은 시간에

개화할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쓸쓸한 지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조급해함 없이

충분히 그 순간을 음미하며

그냥 그렇게

가만히 존재한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미세한 바람에

아주 약간 나뭇잎을 살랑거리며

그렇게 그냥 존재한다.






오늘만큼은 나도

그냥 나무로

가만히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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