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은 책임을 미루는 가장 쉬운 방식이다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어.”
“그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상황이 그랬잖아.”
이 말들은 대체로 사실이다.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문제는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삶에서 선택이라는 감각이 점점 사라진다는 데 있다.
떠밀린 삶처럼 느껴질수록
우리는 이상하게도 편해진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전부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편안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삶의 주도권이 빠져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하나 있다.
선택은 항상 적극적인 결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것도 선택이고,
미루는 것도 선택이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선택이다.
다만 우리는
그 선택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삶은 종종 이렇게 느껴진다.
내가 산 것 같지 않고,
살아진 것 같고,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여기까지 와 있는 느낌.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완전히 떠밀린 삶이라는 건 거의 없다.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을 만든 경우가 더 많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과거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지금도 계속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 뒤에 숨을 건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선택의 자리에 다시 서볼 건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선택은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선택할수록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선택할수록 감당해야 할 것이 늘어난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자유보다 떠밀림을 택한다.
하지만 선택을 포기한 삶은
안전할 수는 있어도
설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왜 여기 있는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조차 말하기 힘들어진다.
지금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과거의 선택을 캐묻기보다
현재의 태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선택하고 있는지,
아니면 선택하지 않음으로
모든 걸 미루고 있는지.
선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방향을 조금 틀겠다는 판단,
이건 하지 않겠다는 결정,
이건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태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떠밀린 삶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다른 인생을 꿈꾸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선택한 사람으로 다시 서는 것이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내 삶에서
‘어쩔 수 없어서’라고 말해온 것 중,
사실은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