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은 종종 ‘버팀’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다
도망은 대개 도망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지금은 버티는 중이야”라는 말 뒤에 숨어 있다.
사람은 잘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책임감, 성실함, 상황, 타이밍 같은 말들로
지금의 상태를 설명한다.
이 말들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이 말들이
질문을 대신해 버릴 때다.
버팀은 인내의 문제가 아니다.
버팀은 방향을 알고 감수하는 상태다.
불편함이 있다는 걸 알고,
그 불편함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알고,
그래서 지금은 견디기로 결정한 상태다.
반면 도망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도망은 판단을 유예하는 방식이다.
지금 그만두기엔 불안하고,
지금 바꾸기엔 애매하고,
그래서 결정을 미루는 선택.
이때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
“일단 버텨보자”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점이 하나 있다.
버팀에는 설명 가능한 이유가 있고,
도망에는 설명 대신 반복이 있다.
버티는 사람은 말할 수 있다.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언제까지 이 상태를 감당할 생각인지,
무엇이 바뀌면 다음 선택을 할 건지.
도망치는 사람은
그 질문을 만들지 않는다.
질문이 생길 것 같으면
더 바쁘게 움직이거나,
더 오래 참거나,
상황 탓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도망은
게으름이 아니라
과잉 성실함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몸은 움직이고 있지만,
판단은 멈춰 있는 상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도망을 인정하는 건
패배도, 무책임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해석을
내려놓는 첫 단계다.
진짜 문제는
도망을 버팀이라고 부르며
계속 머무는 것이다.
그 상태가 길어질수록
사람은 지치고 동시에 닳아간다.
오늘의 질문
지금의 나는
이 상태를 ‘왜’ 감수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질문 자체를 피하기 위해
버틴다는 말을 쓰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