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거짓말이 아니라, 너무 그럴듯한 변명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자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만 대놓고 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한다.
그래서 그걸 거짓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현실적인 판단, 상황 고려, 어쩔 수 없음.
이름만 달라졌을 뿐, 결국 변명이다.
변명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실의 주어를 바꾼다.
내가 선택한 일이
어느새 상황이 만든 일이 된다.
“내가 이렇게 하기로 했다”는 말은 사라지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문장이 남는다.
선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선택에서 ‘나’는 빠져 있다.
변명이 늘어나면
삶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잘 굴러간다.
문제도 없고, 사고도 없고,
크게 잘못된 선택도 없다.
대신 삶은
유지되는 형태로 굳어진다.
결정은 줄어들고,
관리만 늘어난다.
바꾸는 일은 부담이 되고,
지금 상태를 합리화하는 말은 점점 정교해진다.
그래서 하루는 바쁘게 지나가는데
하루를 살았다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이 삶이 내 선택이라는 느낌은 약해진다.
변명은 나를 보호한다.
불안을 눌러주고,
당장의 결정을 피하게 해 준다.
그래서 꽤 유용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넘겨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는 사람이 된다.
이쯤 되면
삶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상하게
내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삶인데,
내가 한 발 비켜서 있는 기분.
그래서 자꾸 돌아보게 된다.
언제부터
삶을 설명할 때
‘내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을
먼저 꺼내기 시작했는지.
오늘의 질문
요즘의 나는
“내가 이렇게 살기로 했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그럴듯한 변명으로
하루를 이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