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괜찮은 척을 하게 되었을까?

괜찮다는 말은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다

by 이키드로우

“괜찮아.”

이 말은 생각보다 자주 쓰인다.

상대에게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말 괜찮아서라기보다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괜히 일이 커질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괜찮지 않은 상태를

괜찮은 말로 덮는다.


괜찮은 척은

강해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편리하기 때문에 배운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상태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의 흐름을 깨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괜찮은 척은

사회생활에 꽤 유용하다.

문제를 만들지 않고,

관계를 흔들지 않고,

일상을 계속 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에는

분명한 부작용이 있다.


괜찮은 척이 반복될수록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안쪽으로 밀려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정리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몸에 남아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별일 아닌 일에

유독 피곤해지고,

사소한 말에

괜히 날카로워진다.

때로는 실제로 몸이 아프기도 한다.


괜찮은 척은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을 보류하는 방식이다.

나중에 보자는 말로

지금의 상태를 미뤄두는 것뿐이다.


문제는

이 보류가 길어질수록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데 있다.

내가 뭘 느끼는지 묻지 않게 되고,

느껴도 말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감정은

점점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냥 무난한 상태.


하지만 무난함은

안정이 아니라

감각의 둔화일 때가 많다.


괜찮은 척을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항상 솔직할 필요도 없다.

다만 괜찮은 척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무미건조해진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약해지는 게 아니다.

상태를 인식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인식이 없으면

삶은 계속 그냥 흘러가기만 한다.






오늘의 질문


요즘의 나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라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감정을 설명하지 않기 위해

그 말을 먼저 꺼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