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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Jul 13. 2024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신1~17)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나... 마음에, 손과 이마에, 집 문기둥과 문에...] 없다. 당연히 마음에도 없지. 손에도 없고 이마에도... 이마에는 무엇들이 서로 충돌하다 굳어버린 듯 혹이 자리 잡았다. 머리에서 터져 나온 수많은 노란 메모지들은 언젠가 문에서 떼어 깊은 서랍 속에 모두 숨겨버렸다.


그러게. 아무것도 없네. 나의 빛이 어느새 나로 하여금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는 것을 이제야 아네. 이만하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겠지. 내 속에 영원히 각인된 줄 알았지. 심장에 잘 달라붙어서 같이 잘 뛰고 있는 줄 알았지. 그 믿음으로 앞으로 남겨야 될 것은 가슴에, 이마 안쪽에다 적으면 그만이었겠지. 그러나 낯설고 두려운 아침들로부터 내 속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는 나를 과신하고 말았던 거야. 내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무언가가 병원균처럼 죄다 집어삼키는 것 같아. 불안과 우울, 증오와 체념, 죽고 싶은 생각, 드나들기 좋은 연약한 몸이지. 그런데 이봐, 몸은 단순히 영혼의 그릇이 아니지. 우리가 끝내 인간의 형상에 도달해서야 그것을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영혼이란 연결과 교통의 정점이니까. 그러니 이 몸의 수많은 접촉들 중 뭐 하나 감염되거나 끊어진다면 영혼이 발현되질 못하는 거야. 나는 내 몸, 내 영혼, 내 우주, 하나님에 자신만만했지만 틀렸어. 늘 깨어있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해. 게다가 세상은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틈만 나면 유혹하고 방해하지. 그러니 영혼을 위해서만큼은 정말 귀찮지만 그놈의 노력을 말해야겠지. 그래야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예쁜 몸을 가지고 세상을 누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 못할 때는 머리카락 한올부터 세상 모든 게 짐스럽고 증오스럽거든. 진짜 머리가 도로 다 빠진다니까. 염병 하나님이고 뭐고 지금 당장 보란듯이 나가떨어져버리고 싶어져.


[여러분이 쫓아낼 민족들이 우상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건 야산이건 푸른 나무 아래 건 그 어느 곳이든지 다 없애버리십시오.] 정말 오랜만에 눈을 감고 앉아 있어 봤어. 호흡도 심박도 불안정하고 모든 게 엉망이었지. 이 부조리를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빚어야 할까... 정말 지긋지긋하고 힘들어. 이제 못하겠어. 나는 할 수가 없어. 이런 나를 가엽게 바라보는 것조차 지겨워. 지금 이 순간도 힘에 부쳐. 나도 모세처럼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아. 깨어난 뒤로 쭉 그래왔지. 내가 알던 말들과 몰랐던 말들 전부 거짓되고 하찮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런데 뭐? 더 닦을 도가 없어? 도는 숨 쉬듯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계속되어야 도지. 산 꼭대기에 한 번 올랐으니, 거기서 태양을 봤으니 끝이 아니고. 태양도 산도 내 안에 늘 살아있어야지. 기초 없이 어쩌다 운 좋게 트인 눈으로 함부로 살아 다녔구나. 그러니 언제든 간단히 무너지는 거지. 습인가. 본성인가. 여기에 대항하는 게 맞나. 이거라면 내가 애써야 하는 게 맞나. 어쩌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게 된 거지. 왜 오늘 굶어 죽더라도 나이길 바라는 거지.


[왕에 대한 규정 (...)자기 곁에 두고 평생 동안 읽으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법을 배우고 거기에 기록된 모든 법과 규정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게 되고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그 후손이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괴롭지만 결국엔 스스로 법을 짓고 새김질해야 될 거야. 그래야 나를 통치할 수 있는가 봐. 법을 세우는 것마저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극도로 경계해 와서 나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법이 없어. 그런데 무법은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어. 나는 끝내 자유가 되지 못한 혼돈으로 남아있어. 자유를 자유로 인식하고 자유롭게 누리려면 반짝이는 못으로 고정된 믿음과 얇고 가벼운 직물이 필요한지도 몰라. 하늘과 날개. 그리고 평생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르지. 그것만은 싫은데. 나는 이 순간 내 하나님으로부터 쓰여진 이야기를 믿고 싶어. 다 어디 갔나 싶어. 모세처럼 깨뜨리고 다시 써야 될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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