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0~36)
무시무시한 이스라엘 놈들이 이 땅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다가온다.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땅이 갈라지고 층이 생겨 온종일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들은 밤이고 낮이고 공포에 떨고 있다. 왕도 이성을 잃었는지 근처 고향 땅에 살고 있는 발람이라는 자를 데려오려 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어릴 적부터 아주 신통했다는데 왕은 그가 이스라엘 놈들에게 저주를 내려주기만 한다면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저 거대한 괴물에게 과연 저주가 통할까.
발람이란 자는 꽤 진지한 모양이다. 이스라엘 진영을 염탐하려는 것인지 며칠 동안 왕과 함께 바알산을 오르더니 비스가산도 갔다가 브올산에도 갔다. 저들의 몸집이 대단하니 사방에서 구석구석 저주를 내릴 심산인가 봐. 품이 많이 들 텐데 우리 짠돌이 왕이 사례는 잘해줬을까. 동향이니 잘해줬겠지.
왕이 발람에게 속았다. 저주는커녕 왕이 보는 앞에서 저들에게 연달아 축복을 내려줬다고 한다. 강변 출신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여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몇몇은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그들은 바알 신에게 절을 하더니 여자들과 제물을 나눠 먹고 있다. 그거 먹으면 안 되는데.
죽기 전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이나 하러 브올산에 올랐다. 오르는 길은 어쩐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웬일이냐 물어보니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들이 밟는 땅은 부드럽고 평탄해 보이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맨발로 산 전체를 걸어와서 알고 있다. 그 땅에는 생명이 없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개미 한 마리 얼씬 않는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무슨 말인가를 지껄이며 죽은 터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모두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브올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도 미쳤나 보다. 그들은 온종일 눈부시고 시끄러운 망령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산사태가 나서 죽을 거라고 한다. 얼마 전 왕과 발람이라는 사람이 다녀간 뒤로 이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왕은 저주에 실패한 것이 탄로 날까 봐 급히 새 길을 내어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축복의 길이라니! 왕은 나의 맨발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름답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발람이 왜 저들을 축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다. 그런데 얼마 전 여자와 같이 온 한 남자가 말하길 그들의 왕이 음행한 자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있다고 했다. 사라진 여자들은 음행한 자들의 몸과 함께 창에 꽂혀 천막 밖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살인자들을 위해 도피성을 짓고 있다고 했다. 발람이 실은 저주에 성공한 게 아닐까. 무서워서 발을 헛디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