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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Nov 06. 2024

11월의 안녕




11월. 여름에 비해 잔고는 줄고 목숨도 떨어졌지만 한없이 기쁜. 평화로운. 안전한...... 창문을 활짝 열 수 있고, 백열전구가 따듯해지고, 손뜸 대신 인센스가 아지랑이 피어올리고 그 향기 입으며 더욱 짙어지는 커피와... 청량한(BLACKGREEN) 담배 맛보다 잎을 떨군 나무 맛(TEAK)의 흡입률이 올라가는...... 그 맛으로 종일 수프를 끓이고 싶어져. 욕조에 오래 누워 있고 싶어져. 욕조는 식지 않아. 내가 거기 들어 있는 한 영원할 거야. 변기가 차가워도 내 엉덩이가 금세 따뜻하게 덮여줄 거야.

그 모든 것들이 섞여 노란빛을 내는. 내다보면 노란 초승달 떠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11월을 치닫을 때는 알지 못했어. 철저히 홀로 있으며 알게 됐어. 지난 두 번의 11월을 넘겨 봤어. 화분들도 그랬어. 11월은 봄을 준비하는 마음이었어. 열 하고도 다시 하나이니까. 그렇게 열둘로 커가고 열셋으로 저물지 못한 채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곤 했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13월이 어디에 있는지.


나쁘더라도 반.

언제라도 반.

일 년의 반.

삶의 반.

지금부터 반은 미소질 수 있다는 건 퍽 괜찮아 보여.

그래도 반은 내가 마음에 드는 거야.

내가 귀해지는 거야.

사랑스러워지는 거야.

척박함이.

척박함 안에서만이 나는 자유로와.

빛나.

살아있음을 느껴.

가만있어도 꿈틀대는.

사무치는.

여행하는.

꿈을 꾸는...

하고 싶어지는.

하고 싶은.

하루 더 살고 싶은.

괜찮네.

내가 좀 있어도 괜찮네.

이것 봐 그 큰 사과를 벌써 다 먹어버렸어.


왜 그럴까. 추위에 맞서려 세포가 꿈틀대는 걸까. 자글자글 숯처럼. 안정적인 열량의 쓰임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런 접근은 재미가 없어.

좀 무식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11월이 왔다. 그 순간이 왔다. 싶은 게 마음에 들어.

그 기분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주워듣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으니까.





혼자는 많은 여행을 했어.

셀 수 없이 분열했고 어떤 것들은 다시 달라붙었어.

오랫동안 꾸깃꾸깃 압축되기도 했고 일순간에 팽창하기도 했어.

유물적으로는 축소되거나 확장되는 것처럼도 보였어.

세상이 몇 번이고 뒤집히며 벗겨졌어.

어두운 세탁기 속에서 이리저리 두들겨 맞으며 묵은 때 벗겼어.

벗겨진 만큼 삶을, 빛과 어둠을 알게 됐어.

그리고 앎은 언제나 지구별만큼 작고 보잘것없다는 것도.

때문에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도 11월은 알려줬어.


혼자인 적이 없었어.

그것은 절망 되어 외로움 되어 내 곁에 있었어.

나를 지켜줬어 두려움도. 내 곁에 머물며 다른 이름이 되어갔어.


나는 그 일을 하고 있었어.

앞으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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