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숲

by 치카치카



낙엽 젖을까

우산을 펼쳐드는

사려 깊은 숲












초가을비 내립니다. 드물게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여겨지는 순간도 옵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누구나 비에 젖지 않으려 애쓰지만—우산을 들거나 우의를 덧입지만—나는 쫄딱 젖은 몸과 텅 빈 손으로 역시 쫄딱 젖은 세상과 하나 됨을 좋아합니다. 늦지 않게 관념의 문턱 너머 진정한 기쁨을 누릴 줄 알게 해주심 감사드립니다.


비에는 바다의 소금기와 흙냄새의 미생물이 함께 깃듭니다. 그것들은 피부를 스치며 신경을 깨우고 코끝에 닿아 마음을 고요히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러움과 두려움으로 또 단지 모두가 우산을 쓰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비를 자동으로 피합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실컷 비를 맞아보지 못한다면 그만한 손해가 또 어디 있을까요?

게다가 숲 속엔 우산이 얼마나 많은가! 낙엽과 작은 벌레들을 위한 풀잎! 버섯들! 수많은 나무들과 고즈넉한 정자까지! 우산공장이어라! 수십 겹 우산으로 걸러진 비의 맛은 또 얼마나 달콤한지!
애기낙엽버섯



하이쿠의 주인공인 애기낙엽버섯은 숲 속의 청소부이며 낙엽을 분해하는(부생생활) 버섯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의 ‘비’는 땅 위로 떨어지는 바로 그 비이며 비유이자 상징이자 김태희 씨의 배우자입니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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