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이 내리는 가을비가 사람의 몸에도 새벽이슬로 맺힙니다. 아직 어두운 창문을 열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끼는데 자연스레 검지와 중지가 서로 달라붙어 나의 가슴과 어깨, 무릎을 부드럽게 문지릅니다.
가을의 습기로 벗겨내기 좋게 불려진 살점입니다. 여름내 커피물처럼 진해진 피부가 똑똑 떨어집니다. 어둡고 고요한 새벽에 이루어지는 은밀한 작업입니다. 무성했던 잎들이 떨어지듯이, 청설모가 털갈이하듯이, 이 사람은 피부를 문지르며 여름날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두둑 떨어지고 맙니다. 떨어진 것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으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올여름엔 가진 게 있었군, 작년보다 몇 배로 덥고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잘 견뎠네, 말합니다. 바라던 금태양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금발은 애초에 무리였고 피부도 얼룩덜룩, 양아치는 더더욱...).
여름 그림자는 なつかげ(나츠카게)로 여름의 계어입니다.
가을의 습기는 あきじめり(아키지메리)로 가을의 계어입니다. 가을장마철 같은 날씨에 공기가 눅눅해진 상태로, 특히 가을 특유의 쾌청한 날씨와의 대조로 습기가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 편의 하이쿠에 두 개의 계어를 겹쳐 넣는 기법을 ‘겹침계어(季重なり, 키가사나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