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이슬보다

by 치카치카



첫이슬보다

거미줄 먼저 끊다

청설모 갈채












결승선을 헤치듯 얼굴에 걸린(얼굴이 걸린) 거미줄을 끊으며 썼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머리 위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청설모가 까득까득 잣(을) 까는 소리와 컨페티처럼 떨어지는 잣껍데기의 향연입니다. 이 경이롭고도 오묘한, 축복 같은 새벽 숲의 한 장면을 하이쿠에 욱여 넣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무릎이 괜찮으면 맨발 대신 운동화를 신고 설설 달려봅니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왠지 조금 달려버리게 됐는데 하필 허벅지와 옆구리가 간지러운 느낌(살 쪘으니 좀 뛰어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존재가 연소되는 느낌, 고향 별 생각나는 느낌, 재밌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십 년도 전입니다. 바닷가 근처에서 지낼 적에는 조석으로 방방 잘도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감히 뛰질 못했습니다. 그보다 빠르고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영영 끝이라고 못 박았지만 떠밀리듯 뛰니까 또 뛰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감격스러운 순간에도 오토바이는 꼬옥 끼어들더랍니다(알랑가 모르겠지만 나는 브런치 대표 오토바이 혐오자입니다). 넓은 도로 놔두고 꼭 내 옆으로 붙어 가면서 기어이 매연을 잔뜩 맥이고 내 앞길마저 전부 매연으로 뒤덮습니다. 나도 가만있진 않습니다. 전방으로 가볍게 손을 들고 엿을 맥입니다. 엿 모양의 손가락을 지팡이 삼아 저주도 내립니다. 나는 타고나길 엘리야만큼이나 기도도 잘 듣고 저주빨도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미안합니다. 그치만 정말 밉습니다. 그건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암만 눈 씻고 찾아봐야 없습니다. 소음(커다란 진동), 바퀴가 둘 뿐, 단 이 두 가지로부터 나오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게요. 아, 와사바리 걸고 싶다 진짜...




거미줄은 여름의 계절어, 첫이슬(初露)과 청설모는 가을의 계절어입니다. 이슬은 일 년 내내 생기지만 가을에 가장 많으므로 단순히 이슬이라 하면 가을을 뜻합니다. 이슬은 곧 사라지므로 덧없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시에 둘 이상의 계절어가 사용되는 경우를 겹침계어(季重なり, 키가사나리)라 합니다. 계절의 대조나 묘한 분위기 연출, 하나의 계절감을 부각하면서 다른 계절어의 뉘앙스를 옅게 조절하는 등 시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한 기법입니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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