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분에 물 주는 날. 시월부터는 수돗물도 고개를 떨구고 차츰 차진다. 그래서 화분에 물을 줄 때에도 내 손바닥을 한번 거쳐서 준다.
2 온수 내지는 미온수로 설거지하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부럽다). 나도 기름때가 더 잘 벗겨지는 느낌이라 온수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몹시도 꺼림칙한 기분이 든 뒤로는(뭔지 모름) 한겨울에도 찬물로 설거지를 한다. 고무장갑은 거의 껴본 적이 없다(만나온 여자들이 고무장갑을 싫어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건 세상에 원래 없었다. 도구와 편리보다 지혜를 좋아하게 되면서 애초에 설거지가 잘 나오지 않도록 삶을 고쳤다. 당연히 기름 벅벅 조리방식을 멀리하고 그 밖에도... (설거지 얘기는 그간 너무 많이 해 먹어서 그만하련다) 아무튼 손이 좀 시려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면 노래가 절로 나오고 무릎 엉덩이 관절도 신이 나면서 존재가 점점 가열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변환된다. 차가움은 금세 수증기로 날려간다. 존재의 진정한 따스함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계(절)새끼보다 확실하게 내가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자부심 뿜뿜.
3 툭하면 보일러를 돌린다거나... 빤한 방법을 택하기 전에 먼저 자기만의 방식을 고안하여 실천해 보라. 낯섦과 불편(문제라고 할까)이 닥쳤을 때 이 한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음에서 시작해 보라.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될 것이다. 놀라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든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세상(속세 말고)을 믿으라. 이미 기억조차 잃어버릴 만큼 미친 고통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우리들이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보다 험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 있는 것이다.
4 비빔면 시장은 여름에 더욱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사실 비빔면은 겨울이 제맛이다. 마찬가지로 수돗물이 졸라 차갑기 때문에 면을 빨면 더욱 쫄깃탱글하다. 오히려 여름에는 물이 미적지근하니 찝찝하고 맛도 없다. 아마 그래서 매출이 떨어지니까 여름=비빔면이 각인돼도록 까부는지도 모르겠다. 아님 단순히 이열치열 열무냉면 짱짱맨이라 생각하는 바보라서 그런지도 모르고.
5 제주도에서 찬물 샤워를 하면 서울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
- 제주 수돗물은 ‘차가운 지하수(용암수)’ 기반
- 서울 수돗물은 ‘저수지·댐 표층수’라서 상대적으로 덜 차가움
- 제주는 물이 지하에서 바로 펌프 → 짧은 관로 → 가정으로 빠르게 공급됨
- 현무암 지반은 물을 저장하지 않고 빠르게 스며들고 빠르게 이동(투수성 높음)
6 만약 엄마가 지금 내 꼴을 본다면 제발 바지 좀 입고 양말 좀 신으라며 인상을 팍 쓸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찬바닥이든 돌바닥이든 맨발로 뛰어다니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차가운데 그래서 뭐. 왜 차갑다=위험=고통=회피 따위로 인식하게 됐을까. 거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잘 생각해(느껴) 보길. 그게 진실인지 학습인지.
찬기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에 영감 받아 설거지하다 말고 호다닥 써내립니다.
병입니다.
그럼 이만... 차요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