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미소가 너무 예쁘고... 씩씩하게 밥도 잘 드시고...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난 ‘낭만러너 심진석’ 님에게 영감 받아 단숨에, 다소 투박하게, 예정에 없던 글자를 처박아 본다.
(달리는 이야기 조금 썼다고 유튜브는 짱나게 또 어떻게 알고 소개팅 시켜주네... 불편하네...)
모처럼 진또배기를 만나 조금 들뜬 마음이다.
그의 직업은 비계공.
현장에서의 역할마저 작업자의 길을 내는 사람.
캄캄한 새벽 작업복 차림에 마찬가지로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손목에는 스마트워치가 아닌 카시오 전자시계. 인터뷰어는 걱정하는 태도로 임한다. 굳이 왜 주인공을 안쓰러워 보이게끔 연출하려 드는 걸까. 당연히 주어진 환경 품고 뛰는 거지. 뛴다는데 차림새가 뭔 상관이람? 요샌 달리는 일마저 기업에서 제시하는 폼을 번듯하게 갖춰야만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화면처럼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출발할 엄두조차 못 내겠나 봐? 그런데 완벽이 뭐야? 드라마 속 번지르르한 이미지? 신제품? 육각형? 아니면 오타니? 대체 삶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실은 조금만 둘러봐도 마인드가 그래 보이긴 해. 맹청~해. 쓰레기에 감염돼서 꿋꿋이 쓰레기를 들이지 않으면 못난 줄 알고 저스스로도 끕 나눈다니까. 쓰레기부터가 끕을 나눴기 때문이지. 그 생각 다 어디서 났을까?
너 가만 생각해 봐. 어릴 적엔 뒤로 나자빠질 듯 무거운 책가방 메고 납작한 실내화 신고도 종일 잘만 뛰어댕겼다. 축구 농구 펌프까지 다했지. 스마트 워치는 염병 속도랑 심박을 왜 문자로 고쳐 흘끔거리고 있냐고. 감각이 그렇게도 없어? 제 몸을 그렇게 몰라? 자기를 그렇게 못 믿어? 스마트라는 말에 속지 좀 말라니까? 하나도 스마트하지 않다니까? 굳이 스마트라 하면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도 슬기로운 정신과 그 정신으로부터 말미암는 맨몸(행동)의 아름다움 아니겠어? 없이도 못하면서 감히 어떻게 있이부터 하려고 드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죽어나가는 거야. 스마트 워치는 말야. 조옿~다고 수갑 차는 거야. 해방감으로 달리면서도 가능성과 자유를 스스로 속박하는 거라고. 그건 전심으로 달리는 게 아니란다. 아무튼 스마트를 조심해?! 문자에서 피어오르는 이미지에 속지 말라고. (어제 마침 쿠빵 좀 둘러보는데 로션 이름이 무려 닥터, 바이오, 에코, 로션이더군)
야, 그리고 달리면서 노래는 왜 듣냐ㅋㅋ 그건 또 뉴구의 지시냐... 이러니 진짜 들어야 될 걸 못 듣지. 인간의 성장과 진화가 더뎌지다 못해 반대로 퇴보하는 이유가 다ㅏㅏ 있다니까? 달리면서 듣기는 걸으면서 듣기랑은 또 주파수가 다르단 말야. 이러니 암만 달려 봐야 배움이 없는 거지. 제 편하고 익숙한 우물만 좋다 이거야. 세상의 소리도 제맘의 소리도 즈언혀 못 알아듣지. 노래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건 엄밀히 따지면 네가 아니라니까? 이걸 어쩐다... 그냥 폼이나 잡으려 뛰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다 얘들아. 어쩌다 저런 것들이 거리를 점령하게 된 걸까. 진짜들을 밀쳐내고. 부끄러워 죽겠다. 알록달록 뿡빵뿡빵 등산복 유행할 때부터 알아봤지. 제발 속지 좀 마라 얘들아. 눈 좀 뜨라고. 가볍게 협조하지 말고 그 어떤 기업에랄지라도. 어른들의 그럴듯한 소꿉장난에 힘 실어주지 말란 말이야. 현혹당하지 말란 말이야 등신들아. 아휴, 그렇게 공부만 하고 두발도 복장도 자유가 없으니 그 인과가 이런 거란다. 아휴, 그렇게 공부도 안 하고 두발도 복장도 자유로우니 그 인과가 이런 거란다. 얘들아 얘들아 이제 막 시험 마친 예쁜예쁜 얘들아. 자유다! 하고 뛰쳐나왔지만 그곳은 육신의 감각으론 전연 경계가 보이지 않는 아득히 넓고도 복잡한 울타리 속이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학교에서 배운 경쟁심이 가슴에 남아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갖다버렸으면 좋겠어. 그걸 취향과 소비로 연장시키지 마. 그러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졸업 못하는 거다.
영상 내용에 감복하여 댓글에다 본인 사업체명과 본인 이름까지 당당히 내걸어가며 내가내가 스폰서 하겠다 난리 치는 치과, 한의원, 기타 등등... 왤케 꼴보기 싫냐... 안 부끄러운가...